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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May 20. 2021

소금단지

사랑과 영혼


성경은 영과 혼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말하고 있는데요.

해석과 번역의 과정에서 영과 혼을 아주 다른 언어로 풀이한 때문에 오히려 말씀의 본래 뜻과 의미를 묵상하는데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두 가지만 들어보면 행복선언의 첫 번째 말씀인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3.) 하신 말씀에서 쓰인 '마음'이라는 말의 원어는 '영'(루아흐, 프네우마, 스피릿)입니다. 인간의 ''(네페쉬, 프시케, 소울)과 하나가 된 하느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말씀은 "행복하여라, '영'(성령과 하나 된 영)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입니다.

또 마니피캇. 마리아의 노래 첫 소절에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 1,46-47.)라는 말씀도 원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 '영(성령과 하나 된 영)'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혼'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여기서 혼은 인간적인 '혼'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과 하나가 된 내 '영'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인간) 혼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는 그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요. 신명이 난 것 상태이지요.


참고로 신약 성경 원문에서 마음을 말할 때는 따로 καρδία(카르디아)라는 단어를 157회 사용했습니다.


# 아가페 사랑과 필로스 사랑


성경 번역에서 특히 혼란을 가져오는 말 중에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이라는 말도 구분해서 쓰는데요. 번역할 때 '필로스 사랑'과 '아가페 사랑'을 구분하지 않고 똑 같이 '사랑'이라는 말로 대치해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 뜻이 불완전하게 전달되기도 하지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곁으로 가시기 전 베드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며 내 양들을 잘 돌보라고 하셨는데요. 질문은 이렇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필로스 사랑을 대답합니다.


나를 사랑합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ἀγαπᾷς με; φιλῶ σε: (아가파스 메; 필로 세)


나를 사랑합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ἀγαπᾷς με; φιλῶ σε: (아가파스 메; 필로 세)


나를 사랑합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φιλεῖς με; φιλῶ σε: (필레이스 메; 필로 세)


# 서로 다른 사랑


우리말 성경에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리스어 성경 원문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ἀγάπη)과 베드로 사도가 응답하고 있는 ‘사랑’(φίλος)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서로 다른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성령을 통한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루카 7,47; 로마 5,5.8)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는 사랑”(로마 8,28)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사랑(5,29-30)이자 이웃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사랑(마태 22,39)이며, 원수까지 용서하고 품어주는 사랑(마태 5,43-44)입니다.


반면 베드로가 응답하고 있는 사랑은 ‘필레오(φιλέω)’ 사랑입니다. 친구 간의 사랑이자 관념적이며 정신적인 사랑이지요.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아가페 사랑을 물어보셨습니다.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사랑을 베드로에게 원하시지만, 베드로는 고집스럽게도 마지막까지 주님의 사랑을 모른 척합니다.


결국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어보실 때, 예수님께서는 ‘필레오’라는 말을 선택하십니다. 베드로에게서 아가페 사랑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마음을 헤아리신 것이지요. 베드로의 눈높이에 맞춘 사랑을 선택하셨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인간에게 아가페 사랑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이고 불합리한 희망일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관적인 결론인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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