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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May 27. 2021

2021

5월 27일


상담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 나는 지난밤에 꾼 꿈들을 되살려내야 했다. 최대한 꾸밈없이 기억나는 상황들과 장면들을 되살려 내려 하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매번 이 작업이 힘겹다. 상담사와 공유될 꿈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에 작성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을 구하려 하는 나는 집주인으로 보이는 한 노파와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어요. 그녀는 무척 가난해 보였어요.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은 마파람에 아무렇게나 흩날리고 있었고 낡고 헤진 얇은 셔츠와 치마는 언제 세탁을 했는지 궁금할 정도였지요.


노파는 내 꼴이 좋은 집을 살만큼 형편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지, 망설이지 않고 맞은편에 보이는 정원이 있는 꽤 큰 2층 집을 곧바로 내게 보여줬어요. 하지만, 그 집은 완공된 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뼈대와 외벽은 있지만, 그나마 한쪽 벽이 없는 건물이었죠. 처음부터 벽을 쌓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아마 비용이 없었겠죠. 비바람조차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집을 언덕에서 둘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건물벽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어요. 크기는 물컵의 지름 정도였고, 수없이 많았어요.



그런데 노파는 그 집이 내게 딱 어울리는 집이라고 말했어요. 그러고 보니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기에는 그 집이 딱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답답한 걸 싫어하니 바람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서 좋았고, 그림을 그리려면 꽉 막힌 것보다 언제든 세상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한쪽 벽이 없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특이한 구조를 가진 이 집은 나를 위해 준비된 집이구나라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죠.


과실나무가 집 주위에 울창하게 심겨 있었어요. 복사꽃인 매화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꽃은 활짝 피어 있었고, 멀리 안개에 감싸인 마니산도 보였어요. 그렇게 나는 선물 같은 집을 바라보면서 꿈을 깼어요. 꿈을 깨고 난 뒤, 마음속에는 가득 찬 희망이 잔잔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어떤 약속이든지 그 시간보다 5분 전에 도착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던 나는 오늘도 그랬다. 이미 다른 내담자와 상담 중이었던 상담사는 나를 거실로 안내하며 “잠깐만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상담소의 창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빛이 자극적이다. 빛의 입자들이 서로를 밀치며 거실로 쏟아지고 있는 것 같다. 저 빛은 언제 출발했을까. 빛의 알맹이들이 창문을 통과하며 즐겁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어두운 곳을 서로 먼저 차지하기라도 하듯. 빛의 알맹이들이 서로 미끄러지며 거실의 구석구석을 밝히고 있다.


이끌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까. 오늘 상담의 주제 말이다. 빛과 어둠. 자석의 N극과 S극. 남자와 여자. 땅과 하늘. 서로 다른 극점에 존재하는 것은 데, 그들은 그만큼 강렬하게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


인간의 고통과 행복이라는 말도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인생을 대변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도 없고, 인생의 서로 다른 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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