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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May 27. 2021

소금단지

성전 정화와 무화과나무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마르 11,13.)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화과나무는 율법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로 존중되었습니다. 평화와 안정, 번영의 표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언자들은 무화과의 열매를 통한 비유를 통하여 예언을 하였는데, 무화과나무가 꽃 피고 수많은 열매를 맺음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축복해 주는 것으로(요엘 2,22 ; 하깨 2,19), 반면에 메마르고 열매 맺지 못함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간주되었습니다.(예레 5,17. 8,13 ; 호세 2,14 ; 아모 4,9 ; 요엘 1,7.12)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무화과나무는 곧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구체적으로는 성전과 율법학자나 수석 사제, 백성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성전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오늘 저주받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은 화려하게 꾸몄으나 하느님의 의로움과 현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하나 껍데기만 남아있는 모습이었고 바리사이인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도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는 저주를 성전에서는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마르 11,15).

한편 오늘 복음의 구조도 특이합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일화에 앞서 ‘무화과나무의 저주’ 일화가 나오고, 성전 정화 일화 후에는 곧이어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의 교훈’ 일화가 뒤따릅니다. 성전 정화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역시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스스로 정화하지 못하면  오늘 무화과나무나 성전과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 언제 어느 때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그분의 부르심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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