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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11. 2021

소금단지

사람과 길


# 길 위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


'길'이라는 말처럼 자주 쓰이고, 또 그만큼 많은 뜻을 품고 있는 말도 드물지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면 우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왕래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교통의 수단인 '길'이 있습니다.


또 사람이 어떤 문제에 막혔을 때, 그것을 풀어갈 해법과 이치를 일컬을 때도 '길'이라는 말을 씁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와 그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으로 지켜야 할 행위의 규범이나 도리를 말할 때에도 '길'이라는 말을 쓰지요.


이렇듯 수많은 생명체 중에 유일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에서만 '길'이라는 말을 쓰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유롭게 마음껏 가고 싶은 길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기에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앞선 길은 동물적 본성에 가깝지요. 그러나 후자의 길은 사람의 길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은 한 사회와 공동체에 속해 있기에 자신의 고집과 자유만 내세울 수 없는 길입니다.


눈 덮인 길이라고 아무렇게 갈 수 없는 사람의 길. 반드시 뒤따르는 이들이 있기에, 분명히 발자국이 남는 길이기에. 조심스럽고 때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길입니다. 어찌 보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길이 바로 사람의 길이 아닐까.


# 그리스도인의 길


그리스도께서 앞서 간 길이 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의 길이고 타인의 구원을 위한 길입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 35.)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길 위에 성모 성심이 동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한 마음이셨습니다. 티 없이. 불평불만 없이. 아버지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으므로.


하늘과 땅이 애곡하고 굳은 바위도 산산이 부서지는 십자가의 사랑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만큼 고통스럽고 애절한 사랑이 오늘도 십자가 아래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외아들 예수를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그 어머니의 사랑과 마음.


아들이 비참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성모 성심의 고통. 차라리 당신이 아들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육체가 느끼는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은 영혼이 느끼는 고통입니다. 공포와 절망, 헤아릴 수 없는 한 맺힌 감정들이 뒤섞여 가슴을 지지고 태울 때 느끼는 영혼의 고통은 참으로 말로 다할 수 없지요.


#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마음이 머무는 곳에 몸이 머뭅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감각과 감정이 머뭅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생각이 뿌리를 내립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행동과 언어가 춤을 춥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마음이 이미 썩어있다면...  아무리 깨끗한 옷으로 가려도 악취는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의 기도와 마음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이 머무는 곳에 머물러야겠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의 사랑으로 썩은 우리의 마음도 다시 깨끗이 되살아 날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되찾아 갈 수 있기를. 너무도 선명한 그 흔적과 자취를 모른 척하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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