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

증언자들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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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자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1-5.)


인류의 크고 작은 사건과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시간과 함께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커다란 맥락이 흐르고 있고 알 수 없는 힘과 의지가 숨겨져 있다. 영원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그것은 섭리자의 창조이자 다스림이다.

가장 사랑했던 제자이며, 야고보의 동생 요한은 그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한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빛과 어둠을 가르시고 물과 물 사이를 갈라 하늘과 땅과 바다를 내실 때부터 계셨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함께 계셨고, 아버지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대홍수로 온 땅이 물속으로 잠길 때에도 함께 계셨다. 그분은 모든 생명의 삶과 죽음과 함께 계셨고 다 지켜보셨다.

그분은 친히 당신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고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내리실 때도 거기 계셨으며, 모세로 하여금 홍해를 건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실 때에도,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길고 긴 여정도 함께 걸으셨고, 위대한 임금이었던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지혜로 함께 계셨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살아계시며 당신 피조물의 생ㆍ사를 섭리하셨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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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마태오.

그는 그분의 탄생 신비를 이렇게 증언한다.

그분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물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고사성어 중에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마(名馬)도 백락을 만나야 알려진다는 뜻인데요. 천재도 알아주는 자가 있어야 빛을 본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우선 '백락(伯樂)'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면 그는 주(周) 나라 때, 당대 최고의 말 감정가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손양(孫陽)인데, 말에 대한 지식이 워낙 탁월해서 사람들은 전설에 나오는 천마(天馬)를 주관하는 별자리인 백락이라는 별명으로 그를 불렀습니다. 그 안목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그가 고르는 말은 백이면 백 명마였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였을까요? 백락이 지나가다가 잠시 말을 쳐다보기만 해도 그 말의 가격이 10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일화는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천리마의 이야기인데요.


중국의 그랜드캐년으로 알려진 태항산(太行山)을 늙은 말 한 마리가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면서 오르고 있었습니다. 다리는 자꾸 접혔으며 말굽은 헤어지고, 땀은 흥건하게 몸을 적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이미 늙어서 아무리 힘을 써도 높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좀처럼 간단히 오르지 못하고 있었지요.


백락(伯樂)이 그 말을 알아봤지요. 말은 하루에 천리를 내닫는 명마, 즉 驥(기)였습니다. 명마를 알아보는 데 일가견이 있던 백락의 눈에 비친 그 말은 틀림없는 천리마였지요. 마음이 안타깝고 애달펐습니다. 하지만 백락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그 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나가던 자기 수레에서 내려 천리마의 멍에를 잠시 벗겨주는 일밖에는 달리 해 줄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고마웠던가. 천리마는 소금 수레의 멍에를 벗겨주자 아주 높은 소리로 울었다고 하지요.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깊고 험한 태항산 골짜기를 가득 메웠을 뿐만 아니라 하늘 끝에까지 울려 퍼졌고 천리마의 비참한 운명을 목격한 백락도 함께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타고 난 천성은 천리마였으나 그를 알아보지 못한 주인에 의해 소금 수레를 끄는 일로 일생을 보내야 했던 천리마. 얼마나 달리고 싶었을까요?


하루에 천리 길을 가는 천리마도 그 말의 가치와 능력을 주인이 모른다면 소금밭에서 소금가마를 끌어야 하는 게 어디 말 뿐이겠습니까마는 이를 일컬어 ‘기복염거(驥服鹽車)’라고 합니다. 이렇듯이 천리마나 명마가 세상에 이름을 날리기까지는 타고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천리마의 그 천성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상황과 시대의 부름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가 헛되이 소금 수레를 끌고, 유능한 사람이 천한 일에 종사하는 안타까운 상황들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지요. 증언자 중에 요한 세례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요한 세례자는 하느님께서 그를 선택하셨고 예수님께서도 그를 알아보셨으며, 그 시대의 사람들도 그를 알아봤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평가는 없겠지요.


세례자 요한은 ‘구약시대 마지막 대예언자’이자 ‘메시아의 선구자’. 또 ‘구약과 신약의 가교(架橋)’이자 ‘진리의 증언자’로 기억됩니다. 그 이름에도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이미 아시는 것처럼 처음부터 그의 이름이 요한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아니지요. 사실 요한의 운명은 태중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역경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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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즈카르야가 아들을 하느님의 손에 내어 맡기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결국 고집 센 아버지 즈카르야도 하느님 뜻과 참예언자를 원하는 시대의 요청에 무릎을 꿇게 되지요. 진정한 천리마. 참된 예언자는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루가 1,57-66.80 )


아버지 즈카르야가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쓰자 사람들은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집불통 즈카르야의 입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말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과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삶은 축소되고 생략되었지만, 복음이 전해주는 짧은 말씀 안에서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거룩한 분노’를 묵상하게 되는데요. 이미 아시는 바대로 요한의 삶은 세상과 역행했습니다. 세상이 평가하기에는 바보 같은 삶이었습니다. 광야의 삶에서 그가 지닌 것이라고는 겨우 몸을 가릴 정도의 낙타 털옷 한 벌이 전부였고,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 뿐이었습니다.(마태 3,4.) 그는 선구자로서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았지요.


하지만 극도의 청빈 생활 중에도 그 내면의 삶은 예수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춰주는 내면의 거울이 되었지요. 진정한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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