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의 삶이란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자기의 재산을 맡겼습니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지요. 각자 능력에 맞는 탈렌트를 준 것은 주인이 기대하는 만큼의 신뢰가 있어서였습니다. 주인이 그 사람을 그만큼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탈렌트를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습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한테 받은 탈렌트를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대금업자에게 맡기기만 했어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 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투정과 불평, 불만 속에서 탈렌트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편으로 아쉽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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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탈렌트 가치의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1만 탈렌트의 가치를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일꾼의 하루 품삯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단위지요?
한 데나리온[denarius]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통화되던 은화나 금화의 무게가 약 3.88g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현재 약 80,000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한 탈렌트를 데나리온으로 환산하면 6,000 데나리온으로 6000일, 즉 16년간의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6,000 × 80,000=480,000,000원이지요. 그럼 1만 탈렌트는 10,000 × 480,000,000이 되겠죠?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여러분은 몇 탈렌트를 받으셨나요? 아직 못 받으신 것 같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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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렌트는 손익 계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삶에서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달란트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지금 여기가 끝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Having에 집착하며 눈에 보이는 것,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만 마음이 매여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지금 여기가 마지막이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지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지혜 1,13-15; 2,23-24)
Heaven의 삶에서 소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탈렌트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주신 탈렌트. 주인이 원하는 질문과 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대는 내게 받은 탈렌트로 얼마만큼 그대의 삶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노력했습니까?”
만일 탈렌트를 땅 속에 묻어 두고 다른 이가 가진 것, 내게 없는 것,
물질적인 소유에만 집착하고 있다면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각자가 받은 탈렌트만큼 충실하고 슬기롭게 Heaven의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촛불이 다른 수많은 촛불에 불을 나누어 주어도 그 본래 촛불은 사그라들거나 줄어들지 않지요. 사랑이 우리 각자에게 맡긴 탈렌트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Heaven의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Heaven의 삶에서 탈렌트는 나누면 나눌수록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부유는 각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하게 살기도 하고 불행하게 살기도 한다" -미셸 몽테뉴-
"마음가짐을 통해서 그 인생까지 바꿀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한 탈렌트를 환산하면 6,000 × 80,000=480,000,000원
무엇을 청해야 할까? 과연 나도 '행복하게' 될 수 있을까?
영원함과 생명과 구원이란 무엇인가?
우물가에서 여인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그는 도와주는 이, 구원자다.”
“그는 사람들을 축복해주고 죽음으로부터 되살리는 운명이야!”
집으로 향하던 두 여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 기쁜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딘 걸음보다 앞서 갔다. ‘구원자’, ‘메시아’, ‘그리스도’라 불리는 그의 존재를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어서다. 그 구원자가 곧 이 마을을 지날 것이라 한다.
나자렛 Nazareth 예수(ישוע)의 이름 앞에 붙은 메시아( מָשִׁיחַ, 기름 바른 자), 구원자, 예언자, 주님의 이름의 오시는 분, 랍비(רִבִּי ribbī, 나의 스승, 나의 주인)라는 수식어에서 두 여인은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정보를 얻은 것이라 여겼다.
"드디어 창조주께서 당신의 사랑을 보내셨구나!"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 일을 내게 하셨음이오, 그 이름은 능하신 분이시로다."
우물가에 둘러 있던 여인들이 돌아가며 찬송을 하고 있다. 메시아. 메시아. 최고의 경애와 존중과 믿음의 마음이 담겨 있는 별칭. 우물가의 여인들이 그를 두고 부르는 별칭만으로도 집으로 향하는 두 여인의 걸음에 희망의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 천벌 받은 ‘두 여자’
서둘러 집으로 가는 두 여인 중에 한 여인은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소녀의 어머니다. 그리고 다른 한 여인은 열두 해 동안 피 흘리는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의 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숱한 고생 속에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병을 고치지 못하고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그러나 병세는 더 악화되었다.
사실 열둘이라는 나이와 햇수에 상관없이 여자로 태어난 것이 이미 천벌을 받은 것이고, 죽을죄를 안고 태어난 것인 양 여인들의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자라는 이름만으로도 죽은 듯이 살아야 했다. 그 절망적인 현실은 혈루증을 앓고 있는 병자와 다름없었다. 공동체나 사회에서 힘이 없고 존중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축복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리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그분의 소식을 전하자 회당장인 남편은 한가닥 희망의 끈이 쥐어진 듯했다. 하지만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소녀의 생각은 달랐다. 소녀는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 그런데 어떻게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분을 둘러싼 군중들과 제자들은 모두 남자들뿐이잖아요. 그 사람도 부정 탄다고 저를 가까지 하지 않으면 어쩌죠? 저는 그냥 이대로 죽어가야 하는 건가요?” 소녀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사랑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기쁜 소식은 여인들에게 요원하기만 했다. 구원의 소식이 온 유다 땅과 데카폴리스에 전해졌지만, 막상 여인들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큰 벽이 마주하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수많은 군중이 따르는 그와 마주하기까지 여성이라는 자신의 성별과 ‘부정 탄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당장 눈앞에 드러난 장벽이 되었다.
소녀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듯 보였다. 소녀의 어머니는 그런 딸의 손을 잡은 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만 흘렸다. 회당장인 소녀의 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거라. 아버지가 한 번 나서보마… 그분이 우리 집을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마."
소녀의 아버지 야이로는 그 길로 그분을 찾아 수소문했다. 회당장이라는 자신의 체면을 벗어던지더라도 그분을 모시고 와야만 했다. 죽어가는 딸을 위해서라면 부모로서 못할 짓이 무엇인가?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은가.
회당장이 그의 일행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무리가 호숫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야이로는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 다짜고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 하혈하는 여인
또 다른 한 여자. 12년 동안 하혈병을 앓고 이 여인도 저주받은 존재였고, 외로운 여인이었으며, 의존적인 존재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날들을 고통 중에 있었고, 잔인한 인생을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버림받은 버러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스스로도 천벌 받은 존재, 버림받은 존재.
그녀는 힘도 없었지만 자신감도 없었다. 하지만 딸이 전해준 소식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 수십 년을 절망 가운데 있었고 헤아릴 수 없는 나날들을 고통과 불행한 처지에 시달렸지만, 그의 이름이 ‘구원자’救援, salvatio, יְהוֹשֻׁ֣עַ(예수와) 아니던가.' 그녀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분을 둘러싼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군중에 섞여 그의 뒤로 다가갔다. 그러나 죄인인 몸을 군중 속에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끝없이 되뇌었다. '꼭 한 번만이라도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만일 그가 손을 잡아준다면 앓고 있는 병이 나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몸을 만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죽을힘을 다 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질 수만 있다면.' 수많은 군중들이 에워싸고 서로 밀치며 아우성이라 더 이상 다가갈 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은 더 큰 갈망과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그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댈 수 있다면. 그의 ‘옷자락 술’이라도 만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