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동길 Jun 28. 2021

소금단지

새로운 그림


# 흑색과 백색


화가는 흑색과 백색 사이에 존재하는 셀 수 없는 수많은 색들과 만나고 또 그들을 알고 있고 있습니다. 수많은 색들은 그들 각각의 그들만의 색으로 화가의 캔버스 위에서 되살아납니다.


어떤 색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어떤 작품으로 태어날지. 큰 뜻과 의지는 화가의 것이겠지만, 사실 작품의 완성은 색과 색, 선과 점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들이 캔버스 위에서 다투고 어울리고 경쟁하다가 때로는 화해하기도 하고 또 대립하면서 하나의 작품이 창조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화가의 사전에는 창조라는 말은 있어도 완성이라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미완성된 창조물일 뿐이지요. 다만 작품이 어느 정도 화가의 뜻과 일치했다는 느낌이나 생각이 들면 그때 화가는 그 그림에서 붓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세 사람이 그리는 하나의 그림


베드로와 바오로.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두 사람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 존재합니다. 한 사람 흑색이라면 한 사람은 백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분 성장 배경이나 삶의 자리는 마치 자석의 S극과 N극 같습니다. 신앙의 길에서 주님의 캔버스 위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두 분은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길을 걷고 있겠죠.


베드로 성인 삶의 자리는 배와 그물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삶의 자리는 회당이었습니다.


베드로 성인이 갈릴래아 지방 베싸이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면 바오로 사도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신분으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학식 있는 바리사이였습니다.


베드로 성인이 예수님과 함께 밤과 낮을 보내 그분의 가르침과 자비를 직접 듣고 본 증언자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했다면, 바오로 성인은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던 이들을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스테파노 부제가 순교할 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사도 7,58.)


어부이자 평범한 사람 '시몬' 교회의 반석 '게파(Κηφας)'이 되었다면(요한 1,42.), 교만했던 사울은 “작은(Παυλος, Paulus)”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오로로 변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생전에 베드로 성인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마태 16,18)이라고 하셨다면, 승천 후, 예수님께서는 바오로 성인을 두고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행전 9,15)라고 하셨습니다.


# 매일매일 새로운 그림으로


세상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분은 농부이시자 화가이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께서 흑색과 백색처럼 너무도 다 두 사람으로 교회의 밑그림을 그리셨지요. 그리고 세상의 서로 다른 모든 이들이 서로 다른 색과 소리로 일치를 이루시기를 바라십니다.


서로 다름 안에서 서로 부족한 자리를 채워주며 지금-여기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스도의 소명입니다.


주님의 기도처럼 서로 용서하며, 어제보다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들처럼 서로 다른 색으로 매일매일 새로운 날들을 창조하시는 그분뜻과 하나 되는 일상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금단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