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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02. 2021

소금단지

혼인잔치


# 동물의 상대적 만족감 실험


카푸친 원숭이 두 마리에게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과제를 완료하면 오이와 포도를 보상으로 주었습니다.


단, 실험을 진행하는 환경은 두 원숭이는 각각 다른 우리에 들어가 있지만, 두 우리는 붙어있고 투명하기 때문에 서로를 확인하고 볼 수 있도록 설정하였습니다.


두 마리 모두에게 오이를 줄 때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과제를 수행하고 한 마리에게는 오이를 주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포도를 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원숭이에게 오이는 수분만 가득한 맛없는 것이고 포도는 아주 선호하는 과일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결과가 관찰되었는데요.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에게만 포도를 주자 어느 순간 받은 오이를 먹지 않고 실험자에게 던져버렸습니다.


같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해도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같은 행동을 보였습니다. '상대적 불행감'이 오이를 받은 원숭이를 불행하게 했던 것입니다. ㅡ참조 '원숭이들이 불평등한 보수를 거부하다', 프란스 드발(Frans B. M. de Waal)과 세라 브로스넌(Sarah F. Brosnan)


# 인간의 행복 실험?


이번에는 반대로 카푸친 원숭이들이 인간을 실험했습니다. 자기들이 당한 그대로 '불평등한 조건에서의 인간'이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누군가 더 많이 가지려 아귀다툼을 하거나, 혼자 독식하려 하거나, 혹은 이기적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상황에 노출시켰습니다.


그 첫 반응은 역시 인간들도 다른 동물들과 같이 그 상황을 매우 불쾌해하게 느끼더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본 카푸친 원숭이들이 실험 결과를 놓고 당황해하며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왜냐하면 몇몇을 빼고 대부분의 인간들에게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그 결과는 동물세계에서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불평등한 상황을 서로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요.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기이한 현상이 목격된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서로 가진 것을 나눌 때, 더 행복한 느낌과 만족스러운 감정을 갖게 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이야기가 황당무계할 뿐인가요?


# 인간, 본래 하느님의 영


인간은 본래 선한 영. 하느님의 영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즉 사람은 본래 선한 영, 거룩한 영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누고 공감하는 상황에서 더 만족스러워하고 더 행복해합니다.


또 사람은 동물들과 다르게 물질적인 것만 나누지 않지요. 그들은 마음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또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그러다 보니 수명도 다른 동물보다 더 길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나눔과 공감의 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잔치이지요. 고통과 괴로움을 위로하고 서로 축복해주며 마음과 사랑을 나누는 잔치. 그중에 혼인 잔치는 그야말로 축복과 기쁨의 마당입니다.


# 혼인잔치


오늘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가 한창인데 말이지요.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다가와 이르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드님의 마음을 이미 아시는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이르시지요.


# 다시 오실 때까지 이어지는 축제


성경에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종말론적 구원의 표징이자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실 새로운 제사의 예표이며,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축제입니다.


혼인잔치에서 제자들은 그 이전에도 보지 못했고, 이후에도 볼 수 없을 완전하고도 새로운 정결례와 속죄 제사의 예표를 깨닫게 되었고, 새로운 하늘나라의 잔치를 맛보게 됩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여기', 이제 신부인 교회는 이미 오셨고 다시 찾아오시는 신랑을(마태 25,1-13 참조) 기다리며 사랑의 성체를 나누어 먹고 마십니다. 천상의 축제를 지금-여기서부터 누리고 있는 것이지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의지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하늘나라의 혼인잔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분에 의해 완성된 잔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랑이 다시 오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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