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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03. 2021

소금단지

스캔들(scandal)


# 불편심(不偏心)을 위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24)


편향된 선입견만큼 맹목적이고 무서운 신념도 없지요. 선입견이 우리의 나약한 의식을 장악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지도. 몸도 마음도 우리의 사고도 일방통행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예수님께서는 유다와 이두매아, 티로와 시돈(마르 3,7-12.) 지방을 넘어 호수 건너편 게라사와 데카폴리스 지역(마르 5,1-43.)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기적을 보여주시며 이름을 날리셨습니다. 엄청난 성공을 이루셨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당신의 고향 나자렛을 방문한 예수님의 상황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불길한 예감까지 듭니다. 마치 반전 드라마를 보는 듯 한데요. 복음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 2-3.)


# 스캔들(scandal)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They took offense at him.


σκανδαλίζω(스칸달리죠)


1. 걸리게 하다

2. 넘어지게 하다

3. 죄를 짓게 되다

4. 분노하다.


“못마땅하게 여겼다(σκανδαλίζω 스칸달리죠)"라는 그리스 말에 ‘스캔들’이라는 말이 뿌리를 두고 있는데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들이 놀라워하면서도 못마땅하게 여긴 이유는 '나는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선입견의 옷을 입은 우월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쟈가 가 아니가?"입니다. 풀어보면 "억시로 똑똑네! 쟈가 내가 잘 아는 가 아이가? 내가 쟈 안다."


"근데 우짜다가 쟈가 저리 유명해졌노?"


고향 사람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내가 그를 잘 안다'는 우월감은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선입견으로 중무장을 하고 시기와 질투까지 합세해서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의외의 출세로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될 때, 기어이 그를 상처 내고 흠집 내고 싶어 하는 악의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하게 됩니다.


어떤 스캔들을 불러일으켜서라도, 어떻게든 그의 발목을 잡아서 그가 더 이상 앞서 가지 못하게 하고 싶고, 환호받지 못하도록 하고 싶고 스캔들에 걸려들게 하여 넘어뜨리고 싶은 악의는 우리가 흔히 마주하게 되는 아픔이지요.


결국 고향 사람들은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힐책하시는 예수를 끌고 고을 밖으로 내몹니다.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시지요.(참조: 루카 4,24-30)


# 우월의 착각(illusion of superiority)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의 씨앗은 열등의식과 쌍둥이인 자기 우월의식에서 발아되는데요. 대단히 폭력적이고 파괴적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평균보다 뛰어나다”라고 생각하는 ‘우월의 착각(illusion of superiority)은 열등감의 보상 또는 열등감에 대한 방위 기제로 사용되기도 하며, 인종과 인종, 민족과 민족 사이의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선의와 진실과 반대편에 선 독선적인 우월의식으로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일어나는지 성찰해 볼 일입니다.


창세기를 묵상하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독선적인 우월의식에 의해 악의적으로 조종당해 왔는지 알게 되는데요.


겉으로 보기에는 성덕을 갖춘 인물인 듯해도 그가 얼마나 열등감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지. '내가 너보다 낫다"라는 속삭임 앞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자립하고자 했는지.


'우월의 착각'이야말로 하느님 없이 사는 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죄입니다. 그 위험함 때문에 하느님은 오랫동안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교만한 착각 속에 사는 인류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마침내 그분의 외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선입견과 편견, 부정적인 믿음으로 마음이 완고해진 고향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나와 너'를 부여잡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사랑의 영으로 ‘새로 태어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의 권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선적인 우월의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그 어떤 선물도 안겨줄 수 없습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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