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코로나 19와 함께 뒤늦게 시작된 이상한 한 학기가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다. 코로나 19. 그의 영향은 컸다. 무심히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여겨온 평범한 일을 세상과 교회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하게 했고 많은 것들을 바꾸어놓았다. 수도회와 신학교의 삶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세상과 연결된 부분들은 어쩔 수 없이 바뀌었다. 예를 들면 신학생들의 외출과 방학이 사라진 것이다.
수도자들과 신학생들의 삶이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그 거리가 너무 멀어지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신학생들과 수도자의 삶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곳은 하느님 나라이지만, 세상과 함께 세상 안에서 실현되어야 할 하느님 나라이며, 아버지의 뜻도 세상 안에서 그리고 모든 이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더욱 소중히.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님의 축복이 더욱더 충만하기를 기도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예수 성심 성월이 다가오자 신학원과 수도원의 일상이 더욱 바빠졌다. 학생들은 학기말 시험을 준비해야 하면서 수도원 주변정리도 한다. 교구 신학생들에게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방학 동안 파견이 전면 취소되었지만, 수도원 신학생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나면 다른 공동체로 파견된다.
파견지에 나가 있는 동안 사용하지 않는 개인 물건들은 정리해서 따로 보관하고 수도원 안팎의 청소는 물론 나무들과 동물들도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보살펴준다. 피조물들은 자신의 돌봄 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말 못 하는 피조물일수록 외로움을 더 많이 타고 사랑받기를 더욱 원한다는 것을 신학생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꼬마 수사는 형들과 함께 파견지로 떠나지 않지만, 형들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될까 봐 마태오 수사와 함께 정원에서 가지 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사님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가요? 제 생각에 나무들이 아파할 것 같아요." 꼬마 수사가 나무에서 잘려나간 잔가지들을 옮기면서 물었다.
"우리 마리오도 나무들 하고 같이 아파하는구나! 수사님도 가지치기를 하고 있지만, 나무들과 함께 아프단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잘라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꼭 잘라내야 할 가지만 자르고 있단다."
"꼭 잘라 내야 할 가지요? 그런 가지도 있나요? 제 눈에는 다 똑같은 가지 같아 보이는데요…" 꼬마 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나무를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꼭 잘라내야 할 가지가 보인단다. 나무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나무와 다른 나무의 성장과 생육에 방해가 되는 가지가 보인단다. 이 나무가 병충해를 입지 않고 건강하고 튼실한 열매를 맺으며 수사님과 함께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방해되는 가지는 잘라줘야 해. 나무도 아프고 수사님의 마음도 당장은 아프지만, 나무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 일이지."
"수사님. 그러면 우리 생활도 가지치기가 꼭 필요할 것 같아요. 좀 아프겠지만..."
"그래서 성사생활 중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성사가 고해성사지. 가지치기를 하기 위해서는 오래, 그리고 자세히 바라보면서 잘라내야 할 가지를 선별해 내지 않으면 오히려 나무에게 해가 되는 것처럼.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야. 심사숙고하지 않고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을뿐더러 잘못된 고해성사는 오히려 올바른 신앙생활에 해를 줄 때도 있단다." 꼬마 수사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허허허. 내가 너무 어려운 말을 했구나. 하지만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잘못된 고해성사가 무엇인지를. 거짓된 가지. 게으른 가지. 교만과 허영에 들뜬 가지들. 시기와 질투 같은 큰 가지들은 쉽게 눈에 띄고 금방 식별이 가능하지만, 그 아래 깊이 숨겨진 욕망의 가지들이 있단다. 당장 눈에 띄지 않고 잘라낼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한 나무의 성장과 생명에 큰 위협을 가하는 욕망의 가지가 있단다. 그 가지는 숨겨져 있어서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
꼬마 수사가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잘못된 가지를 누가 어떻게 잘라주나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가지치기는 성령께서 직접 하신단다. 그때 그 피조물은 더 큰 아픔을 겪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가지치기는 사랑하는 이가 사랑으로 하는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에 당장은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아픔을 잘 참아 견디는 피조물은 자신도 몰라보게 튼튼하고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지."
꼬마 수사가 짐짓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은 제게도 아픔이 있어요. 간식을 아무 때나 먹고 싶었지만, 요셉 수사님께서 간식 시간을 정해주셨어요. 제가 아무 때나 간식을 먹는 게 몸에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요. 요셉 수사님께서 절 사랑하셔서 그러셨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사실 마음이 아팠어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요셉 수사님께서 제게 하신 일과 같나요?”
"음… 글쎄? 성령께서 직접 개입하실 때에는 그보다 더 아플 거 같은데. 허허허.”
“그니깐. 수사님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뜻을 살피며 스스로 가지치기를 잘 하자 이 말씀이시죠?” 꼬마 수사가 아는 척을 한다.
“아이구! 우리 마리오. 이제 풍월도 읊겠구나. 허허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성령께서는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거. 그러기 위해서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거죠?” 의기양양해진 꼬마 수사가 한 마디 더 했다.
“우리 꼬마 수사님 이제 강론도 해도 되겠어요. 하하하.”
“원장 수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라 외워둔 말이에요. 헤헤.” 꼬마 수사가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마태오 수사는 그런 꼬마 수사가 자랑스러운 듯, 안아 올리더니 목마를 태워줬다. 가지치기가 끝난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고 따사로운 성심의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