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
새벽 미사를 마치고 요셉 수사와 마태오 수사와 함께 아침 일찍 텃밭에 나간 꼬마 수사.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하지 날. 새벽은 많은 것을 선물한다.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안개가 낀 날에는 보이지 않던 공기가 보인다. 숨 쉴 때마다 들락날락한다.
텃밭으로 가던 꼬마 수사의 눈에 문득 은구슬 한 다발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에 매달려 있었는데, 마치 허공에 달린 빛의 방울들 같았다. 거미줄에 걸린 보석들이다. 짙은 안개가 만들어낸 은구슬. 은방울. 영롱한 눈동자들이 거미줄에 걸려있다. 꼬마 수사의 얼굴을 바라보는 수십수백 개의 맑은 눈동자들에 꼬마 수사는 넋을 잃었다.
요셉 수사와 마태오 수사가 바지런한 손놀림으로 감자의 줄기를 걷어내고 있는 사이 꼬마 수사는 유리알을 매달고 있는 거미줄을 반해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하느님이 만들어낸 보석. 거미줄의 주인은 어디 가고 너희들만 있니? 방울소리를 내어주면 그 소리에 주인이 돌아올지 몰라. 방울들아 맑은 소리를 내보렴...."
고양이 마리가 두더지 구멍에 앞발을 넣고 그 구멍의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거미줄에 마음을 빼앗긴 꼬마 수사는 두 손으로 턱을 괜 채, 거미줄 앞을 떠날 줄 모르고 있다.
"마리오... 이거 봐봐. 알이 굵다."
마태오 수사가 부를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꼬마 수사와 고양이 마리는 그제야 땅강아지처럼 앉아 호미로 땅을 파고 있는 마태오 수사와 요셉 수사가 눈에 들어왔다.
"와... 금덩이들이다! 밭에 묻힌 보물들아 반갑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땅 속에 있던 감추어져 있던 보석들이 밭고랑에서 몸을 뒹굴고 있었다. 곧 일광욕을 즐길 참이다. 게 중에는 제법 알이 굵은 어른 감자들도 눈에 띈다.
"마리오. 참 신기하지? 지난봄에 감자 한 알을 네 조각으로 쪼개어 어머니이신 땅의 품 속에 맡겨두었더니 어떤 것은 일곱 배, 어떤 것은 열 배로 되갚아주었네."
"수사님. 감자밭은 하느님 나라와 같나요?" 꼬마 수사가 작은 손으로 땅 속의 보물들을 캐내며 물었다.
그러자 마태오 수사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유교의 사서오경(四書五經) 중에 (大學)에 이런 말이 있단다.'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대학 전 7장)
씨앗을 뿌렸지만. 그 마음이 아스팔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의 마음은 돌밭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그 마음이 사막처럼 메마른 사람도 있지. 또 어떤 이는 그 마음에 가시가 돋아서 접근하기조차 힘든 이도 있고..."
이어 요셉 수사도 거친 숨을 돌리며 장단을 맞추었다. "성모님의 마음처럼 마음이 하늘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감자처럼 넉넉히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으며 행복해질 수 있지...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면 말이야. 이 감자처럼."
"와! 정말요? 저도 많은 열매를 맺고 싶어요. 이 감자처럼요." 꼬마 수사가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땅 속에 감자를 꺼내며 말했다.
"성모님의 마음을 닮은 기름진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해... 더 중요한 것은 농부의 뜻을 헤아릴 줄 안다면 보다 더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겠지?
"예수님처럼요?"
"그렇지! 예수님처럼. 그러나 마음이 아버지께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세상 것에 마음이 빼앗겼거나,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찾아보고,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을뿐더러 그 사람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는 영원히 신비로 남겨질 테죠." 요셉 수사가 응답하자.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오복음 3장 16절." 꼬마 수사가 마치 노래하듯 성경 말씀을 읊었다.
그 사이 수도원 텃밭에 안개가 걷히고 거미줄에 걸려있던 은방울들도 하늘나라로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