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

다시 돌아온 사람들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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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사람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지요. 작은 아들이 떠난 후로 아버지의 삶은 바뀌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동구밖에 나가 작은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고, 어쩌다 지나가는 행인을 만날 때에는 그를 붙잡고 작은 아들에 관한 소식은 없는지 묻곤 하였습니다. 끼니는 때우고 있는지. 잠잘 곳은 마땅히 정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여 병이 나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먼 고장으로 떠난 아들은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한 번도 스스로 땀을 흘러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작은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마련해 준 돈이 얼마나 소중한 돈인지 몰랐던 것이지요. 더구나 그렇게 큰돈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구마구 써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했습니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돼지가 먹는 것조차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봄이 되어 눈이 녹자마자 집을 나갔던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어느덧 아버지에게도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해가 산을 넘어가면서 노을이 아버지의 얼굴을 한숨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휴… 오늘도 아무런 소식이 없구나. 제발 병이 들지는 않아야 할 텐데.”


아버지는 하루 종일 한숨을 쉬며 작은 아들을 기다리다가 ‘성모송 한 단만 더 바치고 돌아서리라.’ 하며 다시 묵주기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점 같은 것이 비틀비틀거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사람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고... 그런데 비틀거리며 걷는 품이 워낙 먹지 못한 모양이군. 쯪쯪… 곧 쓰러질 것 같구나…”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그 비틀거리는 작은 점이 작은 아들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곧 쓰러지는 그 점이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아들이 분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와락 눈물을 쏟으며, 신발이 벗겨져 버선발이 되도록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게 됩니다.


지쳐 쓰러진 작은 아들은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어있었습니다. 신발 한 짝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맨발인 발에서는 피가 엉겨 붙어있었습니다. 얼마를 굶주렸을까. 아들은 아버지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전까지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요.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고도 모른 척하며,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합니다. 곧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축제입니다. 하늘나라의 축제.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된 축제입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봅니다.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게 되는데요.


아뿔싸!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시기와 질투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합니다.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게 되는데요.


*


되돌아감


세상의 모든 것은 ‘유출-모형-완성’으로 나아갑니다.


만물은 한 분이신 창조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유출), 이데아(IDEA)의 모형(模型, Mode)으로 성장하고 마침내 완성으로 가는 여정을 걷지요. 여기서 완성의 단계는 ‘본디의 상태로 다시 돌아감’ 또는 ‘되돌림’으로 귀천(歸天) 또는 환원(還元)이라고 합니다.


나누어지고 쪼개어져도 그 양과 성질이 변화하지 않는 커다란 하나의 ‘물’에서 작은 방울들이 떨어져 나와 그 모상대로 세상에 머물며 존재하다가 ‘본디의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는 여정. 그 여정은 모든 피조물에게 희망이며 기쁨입니다. 특히 ‘유출-범형-완성’이라는 구조는 모든 피조물에게 ‘가능성’ 그 자체이며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이 구조는 인류에게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언제나 열려 있음을 시사합니다.


죄 많은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가능성’과 인격적 사귐의 여지가 있다는 희망과 기쁨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한편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서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기도 하지요. 큰아들의 예처럼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만, 시기와 질투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절망으로 물들이는 이들도 없지 않으니까요.


#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


텍사스주의 재판소에서 한 살인범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은 그 주의 공직에 있는 동안 많은 공로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서 자기 동생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며 사면을 간청했습니다.


주 법정은 형의 공로와 그의 보증을 참작하여 그의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어렵게 받아 넣은 형은 기쁜 마음으로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게는 조금도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형이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무엇을 하겠니?”


그랬더니 동생은 얼굴을 찡그리며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나간다면 첫째로, 내게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를 찾아 죽일 것이고,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을 섰던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죽여버릴 거야.”


형은 두말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 Heaven의 삶에서 꼭 필요한 일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혼에게는 천사가 가지고 왔던 주님의 축복을 전달하지 않고 그냥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Heaven의 삶은 기쁨과 희망과 나눔의 삶입니다. 우리가 모든 죄로부터 사면을 받았고 용서받았음을 확신할 때, 나도 가서 아버지와 같이 누군가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어주는 삶, 내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삶이 Heaven의 삶입니다.


우리의 내면이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되돌아감’의 여정이 남겨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는 잃은 양 한 마리이고, 잃은 은전 하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과 힘과 재산을 믿고 하느님과 가족과 이웃에게 지은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두가 죄이지만 모두가 ‘되돌아감’의 길, 정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요. 정화의 시간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정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꼭 필요하지요.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고,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우리의 영혼이 다시 나를 만나고 하느님의 조명을 받아 그분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은 내 안에서 잊혀진 신비와 하나가 되는 멋진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우리의 아버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고 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는 지를 살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이나 멈추어 서서 무심코 지나 온 길을 뒤돌아 보시나요?


수급불류월 水急不流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급하게 흘러가도 달은 떠내려가지 않는다.”라는 뜻이지요. 우리의 영혼도 세파에 흔들리거나 휩쓸려 가지 않기를. 언제나 달처럼 떠 있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한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 사건에서도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에게로 향했던 진노를 고집하시지 않습니다. 모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모세의 애원에 굴복하시는 분이십니다.


미카 예언자는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하느님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미카 7,18)


하느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모르는 체해 주시며, 당신께로 돌아서는 이들을 기쁨으로 맞이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로부터 돌아선 죄인 하나로 인해 그분의 나라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참조: 미카 7,19)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작은 아들처럼 아버지의 넉넉함을 기억한다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22-24)


그리하여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돌아온 아들이 용서를 청하든 그렇지 않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선 것만으로도 기뻐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이 충만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세상에 나기도 전부터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허물과 나약함을 잘 알고 계시기에. 나의 죄와 내 잘못을 조건 없이 용서하십니다. 죄로부터 돌아선 나를 품어주고 변호해주시며,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시며 잔치를 벌이시는 분이십니다.


# 아버지의 환대


아버지의 환대는 진심입니다. 화가 렘브란트(Rembrandt)의 그림에서 작은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의 눈은 사시가 되었습니다. 집나 간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눈은 사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당신의 품에 안겨 용서를 청하자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원래 대로 되돌려 줍니다. 보나벤뚜라 성인의 말을 빌리면 ‘되돌림’은 완성이고 일치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여 우리는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와 같이 아버지처럼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품으로 돌아온 아들에 대한 하느님의 환대는 아버지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잃었던 아들이 당신의 품에 안기자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아버지의 넉넉하고 자비로운 품으로 돌아가는 것. 빈손이어도 맨몸이어도 괜찮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하느님께는 최고의 기쁨이자 선물입니다.


아들은 이제 거지의 삶(종의 삶)에서 아버지와 같은 존엄한 품위를 얻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땅에 묻지만, 부모는 자녀를 가슴에 묻습니다. 그런데 잃었던 아들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한쪽 구석에서는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여인이 아들을 애달프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돌아온 아들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의 기쁨은 아버지보다 더하겠지만, 가까이에서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와 자애로우신 어머니.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들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큰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분들이시지요.


# 귀천(돌아감)-새로운 탄생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비통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정화의 길로 일어서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아버지와 어머니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일어서-돌아감’은 베드로의 용기와 같습니다. 베드로와 가리옷 유다는 다 같이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반하고 슬퍼하며 비통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되돌아간 사도는 베드로뿐이었습니다. 유다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었습니다.


회개는 새로운 탄생을 약속합니다. 회개는 ‘뉘우침’이라는 내면적인 통회와 ‘일어서-되돌아옴’이라는 외면적인 결행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그리고 ‘뉘우침’과 ‘일어서-돌아옴’의 바탕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의탁’하는 신앙이 있어야겠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향한 겨자씨만 한 신앙이 우리를 죽음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우리의 걸음이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을 때라도 우리를 그리워하시며 지켜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버지의 품을 찾으려 할 때,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먼 길에 지쳐 비틀거리고 있는 우리를 보시고 가여워하시며, 달려오시어 우리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실 것입니다.


“자신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고, 그동안 무시했던 그대의 영혼이 다시 그대를 만나게 하라. 그것은 그대의 잊혀진 신비와 다시 가까워지는 멋진 일이다.”

-컬트인의 조언 중에서-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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