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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을 살다
하늘나라의 삶은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소유의 종말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선물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Having이 아닌 Heaven 말입니다. 물질이 아닌 탈렌트 말입니다. 이제는 소유가 아닌 '나눔'이고 '누림'이며 '교류'이고 '접속'입니다.
손에 쥐려 하지 말고 함께 나누고 누리며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하느님께 받은 탈렌트로 서로 교류하고 접속하십시오. 이제는 Having이 아닌 Heaven의 삶입니다.
잡으려 하면 사라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근심만 일으키지요. Having하지 못하면 불안과 두려움과 걱정만 일어납니다. 그러나 탈렌트에 집중하면 평화와 희망과 기쁨이 생깁니다.
# '있다'와 '없다'
‘근심’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근심’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고 우울해함’이라 하고,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걱정’은 ‘어떤 일이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움’이라 합니다.
생각해보면 ‘있다’,‘없다’라는 말처럼 ‘모호’한 표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눈에서 보이지 않는 것과 우리 시야에서 벗어난 것을 종종 “없어졌다”라고 말하고, 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서 벗어난 것일 뿐인데도 말이지요.
# 머리띠
얼굴도 못생기고 특별히 잘하는 것 하나 없다고 자신을 평가하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자기 학교의 남학생들 전부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생일을 맞은 그녀는 절친한 친구에게서 예쁜 머리띠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 친구 앞에서 머리띠를 해보았습니다. 친구가 이야기합니다.
“야, 너무 예쁘다. 네가 이렇게 예쁜 아이였어?”
친구의 입에 발린 칭찬일지언정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머리띠를 다시 해보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에도 쏙 들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로 간 그녀는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머리를 하고 있는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아니나 다를까, 평소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주말에 시간 있니? 영화 보러 갈래?”
그녀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띠 하나가 이렇게나 큰 힘을 발휘하다니. ‘이게 다 이 예쁜 머리띠 덕분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만지는데 글쎄 있어야 할 머리띠가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머리띠는 자신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아침에 머리를 감는다고 벗어두고는 머리띠를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 소녀는 자신이 예뻐진 것은 머리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녀를 정말로 예쁘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래서 평소 짝사랑하던 남학생에게까지 데이트 신청을 받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들
우리는 수많은 생각들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선순위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사람은 하루에 대략 5~6만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한다는데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한다는 게 사실 놀랍기도 하는데요.
더 놀라운 사실은 심리학자 ‘섀드 헴스테터’(Shad Helmstetter)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생각 중에 8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15%만이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게 더 놀랍습니다. 내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는 데 허비하고 있다니 안타깝기도 합니다. -참조: 멘탈리허설 중에서-
하루에 5~6만 가지 생각. 그중에 90%는 ‘쓸모없는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 ‘쓸모없는 걱정’ 중에 90%는 어제 했던 걱정이라고 하네요. 실제로는 10% 만이 ‘제대로 한 일’이고, 90%는 ‘불필요한 걱정’에서 비롯된 활동일 뿐이라고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90%의 쓸모없는 걱정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한다고 합니다.
-참조: 데이모스의 법칙-
미국 먼로 병원장인 쉰들러 박사는 류마티스의 30%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생겨나고 피부병의 33%와 담낭병의 50%는 마음에 혼란과 고통으로 생겨난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질병이 외부의 육체적 자극 때문이 아니라 무기력감, 좌절감, 불안, 염려, 공포, 패배감, 절망 등의 정서적 이유로 발생한다는 것인데요. 오늘날 의사들도 육체적 질병의 60%는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므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참조: 정길영-
# 무슨 생각? 어떤 믿음?
많은 생각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마음에 담고 살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내 마음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온전히 '내 맘대로'이다. 소유하지 못한 것(쓰레기 같은)에 집착하고 마음에 담고 있으면 악취만 납니다.
그러나 탈렌트를 담고 귀한 가치들을 담으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날들이 되겠지요. 지금 여러분의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세상의 이치
'새옹지마(塞翁之馬)'의 한자를 풀이하면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이라는 뜻인데요. 세상일은 변화가 무쌍하여 '길흉화복'을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요.
중국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에겐 종마 한 마리가 있었는데, 지금이나 예전이나 말은 귀한 재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은 노인을 위로하며 함께 근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노인은 속상한 기색 없이 "오히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아나요?"라고 담담히 응대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몇 달 뒤, 달아났던 말은 암말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망아지를 데리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웃들은 기뻐하며 노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노인은 시큰둥한 어조로 "축하는 무슨, 이 일이 도리어 화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하겠소?"라고 대꾸했지요.
그리고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암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다시 노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위로했지요. 그리자 노인은 다시 "누가 아오?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라며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다음 해 국경 너머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병사들과 젊은이를 끌고 가는 난리가 났습니다. 대부분의 젊은 이들이 전쟁터에 끌려가 전사하거나 행방불명이 됐지만, 다리를 절었던 노인의 아들은 소집에서 면제를 받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소유가 아닌 '나눔'이고 '누림'이며 '교류'이고 '접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