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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11. 2021

소금단지

성 프란치스코처럼


# 새로운 시작


“저는 저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이제부터 나의 아버지는 더 이상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심을 선언합니다. 이제 저는 지금까지 저의 아버지였던 분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돌려드립니다. 이제 저는 빈 몸으로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 중에서-


1206년 성 프란치스코는 부모로부터 제공되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입고 있던 옷마저 돌려주면서 이같이 가족들과 이별을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또 하나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불릴 만큼 ‘복음’(기쁜 소식) 정신을 따르는 가난과 무욕, 무소유의 삶을 온몸으로 세상에 전했지요.


성 프란치스코는 어릴 때부터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소유론적인 삶에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어린 시절은 부유한 부모가 제공하는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면서 자랐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 가난이라는 십자가


하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묵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을 위해 미래의 당신의 백성을 위해 부유했던 성 프란치스코를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삶에 보다 큰 십자가를 허락하시지요.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우리가 멀리하고 싶은 십자가의 삶이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동굴 속에서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을 찾았고 점점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예수의 삶이 그랬듯이 그가 찾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이었고, 길에서 동냥하는 이들을 만나면 지니고 있는 돈을 다 내주었습니다. 나누어 줄 것이 없을 때에는 가난한 이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웃옷을 벗어 주었습니다.


# 일그러진 자화상


지금 우리의 삶은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빈곤하지도 않지요. 사실 가난을 말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이런 우리의 자화상은 부모의 부정을 눈감아 주고 있고, 부모님께서 남기실 재산에 눈이 멀어있습니다. 또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남겨줄 재산을 축적하느라 눈이 빨갛습니다. 독이든 성배입니다.


우리 모두. 어떻게 하면 내 십자가를 나보다 약한 이들에게 지울까 노심초사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부끄러워서 하느님의 축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이사 1, 13.16.)


'성령의 칼'이 우리의 무딘 양심을 자극합니다. 새로워지라고,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라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심은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사랑의 칼'이 더럽혀진 영혼을 부추깁니다. 더 이상 탐욕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고, 맑은 행복을 찾아가라고. 그것이 진정한 부활이라고.


주님 '말씀의 칼'이 내 마음속에 군더더기처럼 붙어 있는 위선과 교만, 욕망과 사심의 암 덩어리들을 잘라 내자고 하십니다.


너는 충분히 축복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모는 독이든 잔을 청하지 말라고, 네 생명을 위협하는 암덩어리를 달라고 구하지 말라고.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게 맑은 행복을 나누며 살아가라고 주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를 다그칩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 39.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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