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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10. 2021

소금단지

맑은 행복


# 열복(熱福)과 청복(淸福)


“세상에서 이른바 복이란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외직으로 나가서는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관인(官印)을 허리에 두르고 풍악을 잡히고 미녀를 끼고 놀며,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초헌(軺軒 종 2품 이상이 타던 수레)을 타고 비단옷을 입고, 대궐에 출입하고 묘당(廟堂)에 앉아서 사방의 정책을 듣는 것, 이것을 두고 ‘열복(熱福)’이라 하고,


깊은 산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맑은 샘물에 가서 발을 씻고 노송(老松)에 기대어 시가(詩歌)를 읊으며, 당(堂) 위에는 이름난 거문고와 오래 묵은 석경(石磬 악기의 일종), 바둑 한 판[枰],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두고, 당 앞에는 백학(白鶴)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화초(花草)와 나무, 그리고 수명을 늘리고 기운을 돋우는 약초(藥草)들을 심으며, 때로는 산승(山僧)이나 선인(仙人)들과 서로 왕래하고 돌아다니며 즐겨서 세월이 오가는 것을 모르고 조야(朝野)의 치란(治亂)을 듣지 않는 것, 이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 한다.


사람이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하는 것은 오직 각기 성품대로 하되, 하늘이 매우 아끼고 주려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청복(淸福)인 것이다. 그러므로 열복을 얻은 이는 세상에 흔하나 청복을 얻은 이는 얼마 없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13권]-


# 무애(無礙)


“그들은 각자 자기 고향이 있으면서도 마치 타향살이 나그네와 같이 삽니다. 시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수행하지만 나그네와 같이 모든 것은 참아 받습니다. 타향 땅이 고향 같고 고향이 다 타향과 같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 있으나 하늘의 시민입니다.” - 2세기 중엽 익명-


복음 선포의 사명을 따라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는 글인데요. ‘지금-여기’ 나의 삶을 성찰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면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4) 당부하셨는데, 과연 나는 ‘지금-여기’. 세상 그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은 ‘무소유의 삶’, ‘인연에 매이지 않은’, ‘무애(無礙)’의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어제보다는 자유롭고, 걸림이 없으며, 매이거나 묶이지 않은 순례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탈피’와 ‘버림’과 ‘떠남’이라는 외형적인 ‘도피’가 아닌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자유로운 순례의 여정이기를.




"나는 무엇인가?"

"세상과 이웃은 나에게 어떤 대상인가?"


소유의 대상인가요? 과장하면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상대방을 조종하고 소유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이신 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 형제입니다. 신앙고백이 함께 하는 지평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그러자 그 뒤로 이어지는 끝없는 십자가 속에 나의 것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눈에는 모두가 똑같은 당신의 자녀이며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이들입니다. 저들이 모두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함께. 서로 나누며. 배려하고 양보하며 인내하는 이들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비전이지요.


낯선 이들과의 연대, 불편한 사람과의 동행,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겸한 공동체적 삶의 지렛대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앞서서, 뜻이 달라도, 부족하고 어눌하더라도 제 이웃을 사랑하겠노라는 다짐은 파견된 이들이 살아야 할 삶의 기본입니다.


# 보내다(Missa)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이 세상에 오셨듯이 제자들도 스승이신 예수님께로부터 세상으로 파견됩니다.


파견되는 제자들의 임무는 두 가지입니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성사(聖事)를 베푸는 것과 말씀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을 찾아가(마태 11,28) 몸과 마음에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당시 육체적으로 병든 이들에게 제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예수님의 복음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혁명적이고 개벽과도 같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병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기도 했지만, 죄 때문에 하느님과 이웃들로부터 벌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던 이들과 죽지 못해 삶을 연명하는 이들에게 복음은 기적이었습니다.


이전에 믿고 있던 하느님과 다른 하느님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와 병으로 묶인 이들을 풀어주고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어마어마한 말씀. 소중하고 기적 같은 말씀을 선포하러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신신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마태 10,8; 루카 10,4.) 하십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여라 하십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고, 모든 일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이사 66,13)


# 아무것도 너를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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