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요.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을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혹자는 시시포스의 비극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요.
"시시포스의 비극은 산 정상에 굴러 떨어진 돌을 처음부터 다시 혼신의 힘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지리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다."
# 무거운 짐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28.)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요? 시시포스의 돌처럼, 매일매일 반복되어야 하는 무거운 삶의 무게일까요? 아니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운명을 비유하신 걸까요? 아니면 신의 벌일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지요. 오늘도 그분의 마음은 우리의 짐을 덜어주시고자 애쓰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말씀하시는 '무거운 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분의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다음의 말씀을 같이 묵상해야 해야 하는데요.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6.)
당시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지요.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자 이를 눈치채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