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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17. 2021

잔서완석루

진인사대천명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 盡人事待天命


天助自助(천조자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과 함께 자주 쓰이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수인사대천명’에서 비롯된 말인데요.


오래된 사연이 있는 말입니다. 유비의 촉나라가 오나라와 힘을 합쳐 위나라의 조조와 적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촉나라의 명장 관우가 제갈량으로부터 위나라의 조조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화용도로 갔습니다. 역시 관우는 화용도에서 조조의 군대를 포위하게 되었고 조조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관우는 예전에 조조에게 신세 진 일이 있어서 차마 조조를 죽이지 못하고 도망치는 조조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달아나게 하지요.


제갈량은 다 잡은 조조를 살려준 관우를 처형하려 했지만, 유비의 간청으로 그를 살려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데요.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修人事待天命)"

 

사실 제갈량은 처음부터 관우가 조조를 놓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관우에게 조조를 죽이라는 명을 내린 것이지요.


관우에게 조조를 죽일 계략을 알려주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고 그 방책이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다면, 조조의 생사는 하늘의 뜻에 달려있었기에 그 이후의 일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비슷한 뜻으로 모사재인성사재천(謨事在人成事在天)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촉나라의 제갈량이 숙적인 위나라의 사마의와 공방전을 벌이던 때였습니다. 제갈량은 호로곡이라는 계곡으로 사마의의 군대를 유인하고 불을 질러 그 군대를 몰살시키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렸고 사마의 군대는 살아날 수 있었지요.


그때에도 제갈량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말하기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 달렸으나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렸도다.(謨事在人, 成事在天.)”라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삼국지연의-


# 기다림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렛 3,1.) 그 시기와 때를 아는 것 지혜의 시작이겠지요. 때를 아는 것만큼 지혜롭고 현명한 삶도 없을 듯합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3,6)


최선을 다하지만, 때를 아는 것. 그리고 그 시기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 기다림을 연습하는 것이 인생의 여정에서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느님 앞에서 ‘비움’과 ‘내려놓기’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언제나 내 것으로 채우고자 했고, 내 생각만을 주장하고자 했고, 내 뜻만을 강요하고자 했던 나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이제는 하느님의 뜻과 그 사랑을 기다려 봅니다. 그래서 어제만큼만 감사할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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