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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25. 2021

소금단지

씨앗 하나

그림: 이우환 화백


나를 없앨수록 하느님은 커지시고, 내 자리가 좁아질수록 하느님의 자리는 넓어집니다.


하느님을 닮은 나, 내 안에 그분의 신적 본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 마음이 겨자씨만큼 작아 보일 때도 있고, 파란 하늘만큼 커 보일 때도 있습니다.


# 점 하나


내 마음이 처음부터 푸르렀음을

하늘을 올려 다 볼 때마다 깨닫는다


양손을 꼭 쥐고 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파란 하늘


그대, 내 곁에 있음을

움켜쥐었던 손을 펴면 만져지고


그럴 땐, 초록색 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들고난다


점 하나의 영혼이

가난해지는 시간이다


하늘의 신비(神祕)가

내게로 온다


점 하나인

내가 신비가 된다.


# 신비, 神祕


마음이 가난해지니 어제와 다르지 않던 일상이 신비로 다가옵니다. 내가 작아지니 드러난 창조주의 섭리가 무한히 커 보입니다. 내 흔적을 없앨수록 그분의 응원이 더 크게 들리는 이유겠지요.


'신비(神祕)'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묘한 비밀. 또는, 보통의 이론과 인식을 초월한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말씀하실 때,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는데요.


세상사 신비가 아닌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특히 하느님의 일, 그  신비. 즉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묘한 비밀. 또는, 보통의 이론과 인식을 초월한 일"을 비유로 말하지 않으면 어찌 짐작할 수 있으리오.


시간과 공간을 왕래하는 신비. 유한한 사람의 이론과 인식 넘어서 있는 일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군중에게 비유를 들어 말하는 이유는 직접 가리킬 수 없음이오. 직접 일컬어도 알아들을 수 없음입니다.


이는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입니다.(참조: 마태 13,34-35.)


#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


한 여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게의 주인은 천사였습니다.


천사는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하기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너무나 기뻐서 외쳤지요.

“제게 행복과 부, 아름다움과 지혜를 주세요.”


그러자 천사가 조용히 웃으며 말하기를.

“미안합니다. 부인, 여기서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다만 씨앗을 팔 뿐이지요.”




여인이 본 가계는 세상(자기)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있습니다.” 이미 다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씨앗은 '이미'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뿌려지지 않았습니다.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삶과 마음과 함께 버무려져야 부풀어 오릅니다.


# 씨앗과 누룩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 31-32.)


이미 완성된 하늘나라의 신비는 아쉽게도 감추어진 채,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남겨져 있습니다. 때문에 신비입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리기 전까지 그 모습을 감춘 채 신비로 남겨져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작아서 하찮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신비는 씨와 누룩으로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밭에 뿌리고 반죽에 넣으면 보이지 알 수 없는 신비로 존재합니다.


씨앗을 밭에 뿌리면 어떻게 큰 나무가 되는지 누룩이 어떻게 반죽과 함께 부풀어 오르는지 알 수 없을지라도 씨앗은 분명 열매를 맺고 누룩이 들어간 빵은 맛있게 부풀어 오릅니다.


# 천국의 삶


겨자씨와 같은 하느님의 나라. 우리의 마음 밭에 ‘믿음의 씨앗’, ‘행복의 씨앗’, ‘성령의 씨앗’을 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중에 정성스럽게 손으로 꼭꼭 눌러 심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시밭과 돌밭이 아닌 기름진 밭에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하늘의 새가 쪼아 먹지 못하도록. 꼭꼭 눌러 심으시기를. 우리의 ‘마음 밭’은 본래 좋은 땅, 기름진 땅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뿌릴 씨앗. 믿음과 행복과 성령의 씨앗은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답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요. 하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 밭에 뿌려지는 순간. 반죽(일상)과 함께 버무려지는 순간.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이신)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글 듯 열매가 맺힙니다."(마르 4,27-28.)


# 기도로 시작되는 일


기도로부터 시작되는 믿음과 행복과 성령의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 그 말씀은 농부이신 하느님(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가 심은 씨앗은 충분히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겠지요.


씨앗은 땅인 어머니와 하늘인 아버지께서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지만, 뿌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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