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떠오르는 고니 호수는 홍시감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호수는 밤새 덮고 있던 안개 옷을 벗어내며 새날을 맞이 할 준비를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고니 호수를 찾은 베드로 아저씨는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타고 작은 배 위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아저씨 뒤로 작은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베드로 아저씨가 그물을 던질 때마다 흠칫 놀란 새 떼의 날개 짓은 방향을 잃고 흩어졌다가 모이고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바람에 안개도 새 떼의 꼬리를 따라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안개가 걷힐 때마다 호수는 싱그러운 초록색 봄 옷을 뽐냈다. 새 날이 시작되는 호수는 몽환적인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너무나 아름답지 않아? 정말 평화롭고 행복한 아침이야. 그렇지 않니 까까?" 호수의 풍경에 사로잡힌 또또가 까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하지만 까까는 말이 없었다.
"요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막내를 보내고 난 뒤… 까까 너 많이 달라진 거 알아? 밤낮으로 호숫가를 돌아다니는 이유가 뭐야? 나한테 말해 줄 수 없어?" 또또는 까까가 대답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다그쳐 물었다. 하지만 까까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고 초점을 잃은 그의 눈동자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럴수록 또또는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까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궁금했다. 까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의 하루하루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알고 싶었다. 하지만 까까는 말이 없었다. 그럴수록 또또는 까까의 주위를 맴돌며 혼잣말처럼 그에게 말을 붙이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까까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았고 그의 마음은 짐작할 수조차 없어 보였다.
"그리움 때문일거야.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무엇이 보고 싶은 거지. 누구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사랑. 그 흔적들이 그를 아프게 하는 거야. 지나가버린 기억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리움은 늘 새로운 기억들을 되살려내면서 한 영혼의 감정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말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그것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감기 몸살 같은 거야." 태백이 그물질을 하고 있는 베드로 아저씨와 또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농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말했다.
"감기 몸살? 글쎄? 열은 없는데…" 또또는 까까의 머리를 앞발로 만져보며 혼잣말을 했다. 까까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또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태백을 따라 농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은 힘이 없어 보였다.
"정말. 사내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이렇게 평화롭고 행복한 곳에서, 그것도 아침부터 세상 걱정은 다 짊어진 얼굴로 분위기를 망칠 이유는 없잖아." 혼자 투덜거리던 또또도 앞서간 태백과 까까를 따라 농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쯤 지난 뒤. 어깨에 그물을 지고 한 손에 고기가 가득 한 양동이를 든 베드로 아저씨가 농장으로 돌아왔다. 베드로 아저씨는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마리아 할머니를 찾았다. 태백은 어느새 베드로 아저씨의 곁으로 다가가 양동이를 훔쳐보며 입맛을 다셨다. 태백의 등에 훌쩍 올라탄 또또도 아저씨의 양동이가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늘 아침밥은 생선요리가 되겠군. 싱싱한 물고기는 언제나 군침을 돌게 한단 말이야." 베드로 아저씨 곁에 바짝 붙어서 고기를 잡은 아저씨보다 더 의기양양하게 걸던 태백이 군침을 흘리며 또또에게 말했다. 아직 살아있는 물고기를 보며 군침이 흘리는 것은 또또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 또또와 태백의 예상대로 마리아 할머니는 구운 생선을 앞마당으로 들고 나와 태백과 러키, 한라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또또도 태백을 따라 마리아 할머니께로 달려갔다. 그리고 할머니의 발치에서 야옹야옹 소리를 냈다. 마음이 넉넉한 마리아 할머니는 그런 또또를 모른척하지 않았다. 또또에게도 알맞게 구워진 향긋한 물고기가 한 마리 주워졌다. 하지만 또또는 그 물고기를 입에 문 채 곧장 원두막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식욕을 잃은 까까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잔뜩 움츠린 채로 있었다. 또또는 앞발로 까까를 흔들어 깨운 뒤, 그의 코 앞에 구운 물고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장 마리아 할머니한테 달려갔다.
"야옹야옹." 또또는 방금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의 발에 얼굴을 비비며 소리를 냈다. 그러자 마리아 할머니가 또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이코. 우리 이쁜 또또. 아픈 친구를 잊지 않고 있었구나. 마음도 착하지... 자. 옛다! 이건 네가 먹어야 한다.” 마리아 할머니는 또또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고는 구운 물고기 한 마리를 또또의 입에 물려주었다.
또또는 언제나처럼 마리아 할머니 앞에서 구운 물고기를 먹었다. 마리아 할머니는 엄마 고양이가 그랬던 것처럼 물고기의 가시를 발라 주셨다. 그런 할머니와 함께 물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또의 마음은 왠지 혼란스럽다. 그동안 그렇게 맛있게 먹던 구운 물고기의 맛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음이 온통 까까에게로 가 있었다. 마리아 할머니가 건네주시는 물고기를 먹는 것보다 몸살을 앓고 있는 까까의 상태가 더 궁금했다.
또또는 생각했다. '누구든지 몸살을 앓게 되면 식욕도 없어지고 무기력해진다'라고 했던 태백의 말이 틀리지 않다면 지금 자기도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일까. 또또는 지금까지 자기를 키워주고 돌봐주었던 할머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또또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그렇게 맛있었던 구운 물고기도 맛이 없어졌다.
또또는 할머니가 건네주시는 생선살을 무심히 받아먹으며 생각했다. '나도 까까처럼 몸살이 온 것일까. 까까처럼 마음에 병이 생긴 것일까. 까까가 앓고 있는 그 병을 나도 앓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왜 나는 까까가 곁에 있는데도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것일까.'
까까와 또또가 이렇게 원인 모를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농장 마당에는 제법 어른스러워진 초록빛 햇살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