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이를 돕는다

by 진동길




"이장...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될 거야. 나도 이장하고 함께 기도함세." 한동안 마을 이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영감이 자동차에 타며 말했다.


"네. 감사하구먼유. 저도 영감님과 마리오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고 먼유. 그럼 다음에 또 뵐게유. 마리오도 잘 가거라."


"이장 할머니도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사탕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 인사를 나누던 마리오가 한 영감의 낡은 차를 타자 차는 곧 부르릉 소리를 냈다. 가는 길을 재촉하는 소리였다.


"할아버지...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어요." 한 동안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던 마리오가 고개를 돌려 한 영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뭐냐. 뭐가 그리 궁금할꼬." 한 영감이 마리오를 힐끗 돌아보며 마리오의 표정을 살폈다.


"기도를 하면 꼭 이루어지나요?" 꼬마 마리오는 아주 오랫동안 품 속에 감추어 두었던 물건을 꺼내보이기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그럼. 그렇고 말고. 하늘도 스스로 돕는 이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는 언제든 꼭 이루어진단다. 물론 그때와 방법은... 분명히 우리의 생각과 다르겠지만, 기도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꼭 이루어진단다." 한 영감은 창 밖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마리오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꼬마 마리오의 기도가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는 한 영감은 어떻게든 마리오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켠이 찡하게 아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한 영감은 강변을 따라 달리던 차를 갓길로 새웠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말했다.


"마리오. 저기 저 소리 들리지?"


"무슨 소리요?... 물소리밖에 안 들려요. 할아버지." 마리오가 말했다.


"그래. 물소리. 물소리 말이야. 이렇게 한 손을 할애비처럼 귀에 가져다 대고 좀 더 귀 기울여 들어보거라... 추운 겨울을 보내고 졸졸졸 흐르는 저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와! 물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구슬 소리 같아요. 봄맞이하러 가는 길인 가요?" 한 영감처럼 한 손을 귀에 가져대고 한동안 잠잠이 귀를 기울이던 마리오가 신기한 듯 환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래! 바로 그 소리야. 그리고 또? 또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한 영감이 다시 물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온전히 물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마리오를 바라보며 한 영감이 속삭여 물었다.


"아. 이제 알 것 같아요... 기도 소리. 기도 같아요. 노래하듯. 또글또글 옹알거리는 듯한 소리. 봄을 재촉하는 물들의 기도 소리 말이에요.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해요." 마리오가 리듬을 타듯 몸을 흔들며 말했다.


"그래. 그 소리는. 꽃과 나비의 잠을 깨우는 소리이기도 하고 꽃과 꽃 사이를 날으며 꿀을 따는 벌들의 날갯짓을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조금만 기다려보거라 곧 봄이 오면 온 세상이 기도 소리로 왁자지껄할 게다."


"온갖 풀과 꽃, 나무와 새들, 벌과 나비, 바람과 구름, 해와 달의 기도... 할아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마구 뛰어요."


"허허허. 그렇지? 자세히 들여다 보고 조금만 더 귀 기울여보면 온 세상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단다."




한 영감과 꼬마 마리오는 한동안 말없이 봄이 들려주는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풀과 나무와 물과 바람과 함께 기도했다.


두 사람 앞에서 흐르던 물소리가 저만치 흘러갔을 즈음 한 영감이 정적을 깨며 말 문을 열었다.


"마리오."


"예. 할아버지."


"엄마가 보고 싶지?"


"......"


"이런 이야기가 있단다... 옛날 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이었지. 마음씨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나무꾼이 장가갈 생각도 하지 않고 늙고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단 둘이 살았단다.


어머니의 기도는 장성한 아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 장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려면 하루라도 일찍 죽어서 아들의 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정작 아들의 기도는 하루라도 빨리 병든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해서 오래오래 자기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지. 그래서 아들은 매일매일 어머니를 위해 온갖 좋은 약을 구해왔단다.


"난감하네요. 이럴 땐 누구의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야 하나요?" 한 영감의 이야기를 똘망똘망 듣고 있던 마리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단다.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단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뜬금없이 향긋하고 달콤한 벌꿀이 먹고 싶다고 했단다."


"한 겨울에 말이에요? 옛날에는 지금처럼 쉽게 꿀을 구할 수 없었을 텐데... 어디서 구하죠? 에구..." 마리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워낙 효심이 지극하고 마음씨 착한 아들은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장에 가서 금방 구해올게요.'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졌고 눈발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내리고 있었단다. 하지만 나무꾼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지. 어떻게 하든 장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장터에 가면 무슨 수가 생길 것 같아서 장터를 향해 무조건 걸음을 재촉했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더욱더 깊어만 갔고 살을 베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으로 나무꾼의 몸은 점점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갔단다. 그러다 마침내 나무꾼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정신을 잃을 쓰러졌지."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나무꾼은 그대로 죽었나요? 그 어머니는 또 어떻게 됐어요?" 사뭇 궁금해진 마리오가 다그치듯 물었다.


"봄이 오면 아들이 장가가기를 바랐던 병든 어머니의 애달픈 사랑. 그리고 그 슬픈 사랑에서 시작된 어리석은 생각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하루라도 빨리 병든 몸이 없어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꿀을 구하겠다고 집을 나서자마자 아들이 간 길의 반대쪽인 산으로 산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겼단다."


"산속에서 혼자 죽으려 했던 거예요? 흑... 하필 그렇게 추운 날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꼬마 마리오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아들이 행복하기만을 기도했던 어머니는 일부러 눈 내리는 겨울을 밤을 선택했단다. 이유는 그래야 아들이 자기를 쉽게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지."


"눈 속에 파묻혀 죽으려 했던 거군요." 마리오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슬쩍 훔쳐 닦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할애비가 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이들을 돕는다고 말했잖아. 애틋한 모자지간의 사랑과 그 기도를 지켜보던 하늘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무꾼이 서서히 눈을 떴는데. 이게 웬일이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따뜻한 방에 누워있었고 나무꾼의 어머니가 자기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더란다. 죽어가던 나무꾼의 마지막 기억은 '이렇게 죽는구나. 불쌍한 어머니. 어머니 죄송해요'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던 기억밖에 없는데. 눈을 떠보니 멀쩡히 살아있었던 것이지. 황당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던 나무꾼이 당황해하며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유'라고 물었지.


"그래서 어머니가 뭐라고 대답했어요?" 그새 낯빛이 밝아진 마리오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한 영감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배 고프지 않니?"라고 물었다.


"네. 조금... 근데 나무꾼과 그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어요?" 마리오는 배가 고픈 것보다 남겨진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그 뒷 이야기는 네가 생각해 보렴. 어떻게 네가 하느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마리오라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그 사랑을 어떻게 도와줬을까?"


"그러게요? 어떻게 하면 아낌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그 사랑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마리오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사이 한 영감의 낡은 차는 느릿느릿, 하지만 거침없이 봄이 오는 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높지도 길지도 않은 다리 앞에서 멈칫멈칫 주춤거리더니 시멘트 먼지가 날리는 오래된 다리 위를 소걸음처럼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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