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저기 보세요! 버들강아지예요." 다리를 막 건너자 들뜬 마리오가 한 영감과 강변을 번갈아보며 외쳤다.
"할아버지! 저기에 잠깐 멈췄다가 가요." 애원하는 듯한 마리오의 말에 한 영감은 강변 갓길에 차를 댔다. 한 영감의 차가 멈추자 마리오는 한 걸음에 달려갔다.
남빛 물비늘 위에 작은 유리 알갱이들이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것 같은 눈부신 강변으로 마른 갈대들이 봄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미처 솜털을 벗어내지 못한 버들강아지가 수줍은 얼굴로 꼬마 소년의 손길을 온몸으로 반기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 뒷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한동안 버들강아지 꽃을 조심스럽게 만지던 마리오가 대뜸 한 영감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 말이냐?"
"죽다 살아난 나무꾼과 그 어머니 이야기요."
"그래? 허허허. 어디 한 번 들어보자꾸나. 길을 잃고 눈 속에 파묻혀 죽어가던 나무꾼과 아들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어머니가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조금 전에 버들강아지가 제게 들려주었는데요. 상상해 보세요. 할아버지." 마리오가 한 영감의 옆으로 다가와 비밀스럽게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그래. 알았다. 버들강아지가 그 뭐라고 했누. 할아비만 알고 있으마..." 짐짓 놀란 척하던 한 영감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마리오가 다시 두 손으로 한 영감의 귀를 가리고 속삭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실 강아지였어요."
"아! 그렇구나. 강아지." 한 영감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네. 맞아요. 버들강아지가 그때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털어놨어요."
"오. 정말!"
"네에... 그날 밤 나무꾼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자리가 바로 이곳이었데요. 그래서 그날 밤 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어요."
"오호. 그랬구나." 마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영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겨울잠을 자던 버들강아지 나무도 처음엔 깜짝 놀랐고 당황스러웠데요. 나무꾼이 자기의 가녀린 팔을 붙들더니 발 앞에서 풀썩 쓰러지는 바람에 몹시 걱정스러웠데요." 마리오가 버들강아지 나무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왜? 왜 걱정했을까?"
"버들강아지는 발이 땅에 붙어있었고 입이 없어서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했누. 저 버들강아지 나무는." 한 영감은 점점 마리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를 했데요. 간절하게... 그리고 저기 저 갈대들과 함께 자기의 잔가지들을 뻗어서 나무꾼의 몸을 감싸주었데요."
"오호.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구나. 추위에 얼어 죽어가는 나무꾼을 위해서."
"네! 딩동댕. 정답입니다. 그리고 그때 버들강아지 나무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기적 일어났어요."
"강아지가 나타났구나."
"네! 그것도 정답입니다. 나무꾼과 함께 살던 강아지 진돌이였습니다." 마리오가 해말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무꾼이 점점 정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 아주 멀리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사실은 그 강아지도 이리저리 헤매고 있어서 하마터면 나무꾼을 제때에 못 찾을 뻔했데요."
"어허. 그런데 어떻게 진돌이가 나무꾼한테 곧장 달려올 수 있었지?"
"그건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버들강아지의 기도 때문이겠지요."
"어허. 그렇구나. 기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네. 맞아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버들강아지는 더 간절히 기도하며 진돌이를 온몸으로 불렀데요."
"나무는 입이 없는데 어떻게 진돌이를 불렀을까?" 한 영감은 상상력이 풍부한 마리오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추임새를 넣었다.
"이렇게요." 마리오가 춤을 추듯 양팔과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이렇게 온몸을 흔들었데요. 춤추듯이 마구마구...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때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겨울바람도 버들강아지를 도와주었데요."
"겨울바람도 버들강아지의 기도를 들었구나."
"네. 맞아요. 칭찬합니다. 깔깔깔... 역시 할아버지는 뭐든지 다 아시네요. 겨울바람이 한 손으로는 버들강아지의 가지들을 막 흔들어 주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돌이의 등을 떠밀어주었데요. 그래서 진돌이가 나무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데요."
"오호.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구나."
"네에. 맞아요. 왠지 심상치 않은 불길한 느낌을 든 진돌이는 나무꾼을 구하러 오기 전에 이미 할머니의 목숨을 구하고 나무꾼을 찾아 나선 거였데요.
"어떻게... 강아지가 할머니의 목숨도 구해주었을까?"
"진돌이는 사실 나무꾼이 집을 나설 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데요. 그래서 처음엔 나무꾼을 따라나섰는데. 갑자기 산으로 가시는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할머니한테 달려갔데요. 그리고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마구마구 슬프게 울었데요. 그런 진돌이의 마음을 알아챈 할머니도 진돌이를 껴안고 슬프게 울시더니 집으로 다시 돌아오셨데요."
"으음... 참 기특하구나. 그래. 때로는 사람보다 말 못 하는 짐승들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때가 있지. 욕심이 없으니까."
한 영감은 꼬마 마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품에 끌어안아주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버들강아지는 그때, 그날처럼 바람과 함께 춤을 추었다. 먼 훗 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려줄 또 하나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할아버지와 꼬마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봄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