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천금(千金)과 바꾼 것

by 진동길




"할아버지 더 이상 못 먹겠어요. 배가 터질 것 같아요." 목욕을 끝내고 배가 고팠던 마리오가 자장면 곱빼기를 허겁지겁 물 마시듯 먹더니 끝내 반쯤 남겨진 자장면 그릇을 한 영감 앞으로 밀어내며 한 영감의 눈치를 살폈다.


"허허허. 그럴 줄 알았다. 뭐든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기 마련이지. 욕심이 생길 때 주의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단다. 당장 배고프다고 자장면을 곱빼기로 시키고 거디다가 만두도 이인분이나 시킬 때 알아봤다... 음식을 남기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배 탈이 날 수도 있으니 그만 먹는 게 좋겠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마리오가 해맑게 웃으며 너스레를 피웠다. "근데요 할아버지... 사실을 저도 저기 액자에 쓰여 있는 글을 보면서 마음이 쪼금 찔렸어요." 마리오가 맞은편 액자에 쓰인 글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도 식당에 들어오면서 봤다. 고려 후기 유명한 고승의 시인데 마음이 한 편으로 치우침이 없는지 경계를 해야 할 때마다 되새겨봐야 하는 말씀이지..." 한 영감이 마리오가 먹다 남긴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욕심을 따르다 보면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생기면 올바른 생각은 그치고 자칫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옛날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지혜로운 책략가였던 '범려'라는 사람이 살았단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라는 뜻의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긴 인물로도 유명한데. 뛰어난 지략으로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범려는 월(越) 나라의 왕 구천(句踐)의 곁을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도 '도주공(陶朱公)'이라 바꾸고 장사를 해서 큰 부자가 되었단다. 그런데 근심 걱정 없이 살 것만 같던 어느 날, 그에게 또 큰 시련이 닥쳤지."


"지혜롭고 돈 많은 사람에게도 시련이 있나요?" 마리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렴 예부터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 있고 만석꾼은 만 가지 우환이 따른다 했는데, 젊어서부터 온갖 위험과 시련을 잘 살펴가며 살았던 범려의 노년에 또 큰 시련이 찾아왔단다."


"혹시 큰 병에 걸렸나요? 아니면..." 마리오가 물을 마시며 물었다.


"이름까지 숨기고 살던 그에게 아들 셋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의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서 살인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사형을 당할 처지에 내몰리게 되었단다. 범려는 '살인을 했으면 죽어 마땅하다. 그러나 천금(千金)을 가진 부자의 아들을 길거리에서 죽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막내아들에게 큰돈을 내어며 초나라에 보내려고 했단다."


"아들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이네요."


"그런데 예기치 못 한 문제가 또 생겼는데..."


"또요? 또 무슨 일이..." 마리오가 측은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글쎄 큰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죽어버리겠고 난동을 피웠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동생의 목숨을 구하는 중요한 일을 장남인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막내 동생에게 맡긴 것은 아버지가 자신을 무시해서이고 그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자기에게 맡기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했단다."


"헉. 완전히 바람 잘날 없는 집이네요." 꼬마 마리오가 한 숨을 내 쉬었다.


"평소 큰 아들의 성품을 잘 아는 아버지 범려는 큰 아들을 초나라에 보내는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죽기 살기로 나서는 큰 아들을 본 범려는 하는 수 없이 큰 아들을 초나라에 보내기로 했단다. 그리고 큰 아들을 보내는 날 이렇게 신신당부를 했지. '초나라에거든 장생(莊生)이라는 사람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이 편지와 돈을 그에게 해주거라. 명심해야 할 것은 반드시 그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거라.'"


"큰 아들은 곧 장생을 만났나요?" 점점 이야기가 진지해지자 마리오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물었다.


한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 한 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 말씀대로 큰 아들은 무사히 장생을 찾아갔지. 그리고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보내준 돈과 편지를 전했단다. 장생은 범려의 편지를 읽고 나서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이 일은 내게 맡겨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기다리거라.' 하지만 큰 아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지."


"왜요? 체면 때문에 그랬나요?"


"그럴 수도 있겠고 또 빈 손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을 수도 있고, 또 장생이라는 사람을 믿지 못했을 수도 있고, 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


"큰돈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탓도 있겠죠?" 꼬마 마리오가 턱을 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 한 영감은 이야기의 핵심 집어낸 마리오를 바라보며 조금 놀랐다.

"아무튼 장생은 그 길로 왕을 찾아가 초나라 왕을 구슬려 왕명으로 나라의 모든 죄수들의 죄를 용서하는 사면령을 내릴 수 있도록 손을 썼단다. 그리고 그 소식은 곧 초나라 안팎으로 퍼졌지. 하지만 장생이 어떤 수고를 했는지 알리가 없던 범려의 큰 아들은 곧 나라에 사면령이 내려질 것이라는 소문만 듣고서 헛돈을 썼다고 아까워했단다. 큰 아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지 장생을 다시 찾아가게 되는데, 장생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범려의 큰 아들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다시 찾아온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단다. 장생의 생각에 범려의 큰 아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분명 돈이 아까워서일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범려의 큰 아들에게는 돈을 도로 가져가도 좋다고 말하고는 그 길로 왕을 찾아가 다시 사면령을 철회하도록 손을 썼단다."


"아이코. 이를 어째요. 범려의 둘째 아들도 사형을 당하게 되었겠네요."


"그렇지. 결국 큰 아들은 동생의 시체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멀리서 마차 두 대가 오는 것을 본 아버지 범려는 큰 아들을 초나라에 보낸 것을 크게 후회하며 둘째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렸단다."


"근데 할아버지. 범려는 어떻게 멀리서도 둘째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되었어요?" 마리오가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


"간단하지. 큰 아들을 초나라에 보낼 때는 장생에게 줄 마차 한 대뿐이었거든. 만일 일이 잘 됐다면 큰 아들은 마차 없이 돌아왔어야 했는데, 마차가 두 대나 돌아온다는 것은 분명 뒤 따르는 마차에는 살아서 걷지 못하는 시체가 실려있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지."


"쯪쯪쯪... 휴... 아버지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거네요."


"범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땅을 치며 이렇게 말했단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큰 아들은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갖은 고생을 다해봤기 때문에 좀처럼 돈을 쓸 줄 모른다. 하지만 막내는 태어날 때부터 부유하게 어려움 없이 자랐기 때문에 돈 모으는 고통을 모르고 돈을 잘 쓴다. 내가 막내를 보내려 했던 것은 막내라면 거기 가서 돈을 크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돈을 아낄 줄만 알고 써야 할 때, 쓸 줄을 모른다. 그게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된 것이다.'


"휴... 슬픈 일인데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네요... 손에 쥔 걸 하나도 잃지 않으려 했던 큰 아들의 욕심이 결국 모든 걸 잃게 했으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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