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

by 진동길



멀쩡하던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더니 하늘은 기어이 한 차례 소나기를 쏟아내고 있다. 사과밭에서 일하던 한 영감과 꼬마 마리오, 강아지 복돌이는 그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할아버지. 하늘이 하는 일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멀쩡하던 하늘에 웬 소나기예요." 짜증 섞인 말투로 마리오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게 말이다. 할애비도 설마설마했는데... 많이도 뿌려대는구나." 한 영감은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어서 마리오에게 씌워주었다. 소나기는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쏟아졌다.


"저기 보세요. 할아버지... 복돌이는 완전 신이 났네요. 하하하. 복돌아 이리 와..." 한껏 신이 난 강아지 복돌이를 바라보던 마리오도 금세 기분이 풀렸는지 복돌이랑 빗속을 뛰어다니고 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팔을 벌려봐요. 완전 시원해요." 마리오는 어느새 저온저장 창고로 몸을 피한 한 영감을 바라봤다.


한 영감은 빗물이 장화 속으로 스며들어 무거워진 장화를 슬리퍼로 갈아 신고 커피 포트에 물을 끓였다. "마리오. 감기 들라 이제 그만 놀고 와서 코코아 한 잔 마시거라." 한 영감은 양손에 커피 한 잔과 코코아 한 잔들 들어 보였다.


"아. 따뜻하다. 소나기는 이제 곧 잠잠해지겠죠?"

"글쎄다. 이런 기세로는 꽤 오래 퍼부을 것도 같고... 좀 더 기다려봐야겠구나." 한 영감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잔을 입에 가져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철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여전했고 하늘은 마치 검은 커튼을 드리운 듯했다.


"할아버지. 이거 보세요. 신문에 난 기사인데요. 사실인가요?" 코코아를 다 마신 마리오가 창고 구석에서 빛바랜 신문지 한 장을 들고 왔다. 기사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구지화상은 누가 무엇을 묻던 간에 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후에 절에 있던 동자(童子)가 구지화상이 부재중에 절로 찾아와 화상의 법요를 묻는 외부에서 온 사람의 질문에 화상과 같이 흉내를 내어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안 구지화상이 동자의 손가락을 칼로 베어버렸다. 동자가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갈 때 화상이 동자를 다시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려 돌아보자 이때 화상이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로 인해 동자가 홀연히 깨달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글이구나." 기사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한 영감이 마리오의 젖은 머리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구지화상이라는 스님의 행동이 괴팍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할아버지. 스님의 행동과 동자승의 행동이 같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스님이 동자승의 손가락을 베어낸 것일까요?" 마리오는 할아버지의 손에 머리를 맡긴 채 궁금증을 털어 놓았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동자승의 생각에는 스님이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내보이는 행동이나 자신이 스님의 행동을 흉내를 내는 일이 달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엄연히 다른 점이 있겠지?" 한 영감은 간이 의자에 앉으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네. 제가 생각할 때에도 동자승의 행동은 경솔했어요. 불교의 법과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스님이 하는 행동과 아무것도 모르고 원숭이처럼 스님의 흉내를 내는 동자승의 행동에는 그 의도나 의미를 따져 물으면 확연히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할애비의 생각도 다르지 않구나. 스님이 동자승의 손가락을 자른 이유에는 더 깊은 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가령 선행은 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동자승도 공부는 하지 않고 스님처럼 손가락만 치켜세우면 자기도 깨달음을 얻은 고승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될까 봐 동자승의 손가락을 베어냈을 수도 있지.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여라'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야."


"동자의 생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그 손가락질이 부처의 가르침이자 신비한 힘을 내는 마술 손가락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겠어요. 의미와 뜻도 모르고 감정도 없이 할아버지의 제사상에 절을 하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말이에요. 또 한편으로 동자승은 스님의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 스님이 누리고 있는 명성과 환호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할애비도 베어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비록 손가락이 잘리는 아픔이 있었지만 홀연히 깨달은 동자승처럼 오랜 세월 내 안에 쌓인 망상과 집착. 또 실제라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편견의 비늘이 벗겨지고 본질을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사람들에게는 제 각각 그들만의 한계가 있으니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니... 사실 할애비도 무엇이 편견이고 무엇이 집착인지 그것조차 모르겠구나."


"그래서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차라리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지금 예수님이 내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그 옛날 예수님은 아닐 테고 내가 만나고 싶고 내가 만들어낸 예수일 수도 있으니 차라리 내가 만난 예수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허허허.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한 영감은 말을 마치고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


무슨 사연인지 한 영감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 마리오는 언젠가는 꼭 그 이유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이타적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고, 그 숭고함과 거룩함은 변하지 않고 또 잊히지도 않으며 영원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계속 생생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구요."


"허허허... 우리 마리오가 회의론자인 할애비보다 생각이 깊구나."


"그러니까... 담배는 좀 줄이세요... 건강에 해로워요."


"고맙구나. 구지화상이 아끼던 동자승의 손가락을 자르듯 담배를 잘라버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구나 이게 할애비의 한계인 듯싶다." 한 영감은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비를 뿌려대는 하늘을 보며 허공에 긴 한 숨을 내뱉었다. '어쩌면 인간은 숙명처럼 태어날 때부터 풀리지 않는 숙제를 각자 하나씩 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