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압바(Abba)
아빠와 딸의 대화
초등학생 딸이 아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빠가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과 자신들이 있으니 힘을 내라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빠, 용돈을 2000원으로 올려주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천 원씩이었는데, 용돈 100% 인상을 요구한 것입니다. 딸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편지였지만, 아빠는 그날 10,000원을 책상에 놓고 나왔다고 합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그리고 대화는 내용과 태도가 대화의 핵심이지요. 우리는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혹여 아이가 옹알이하듯, 하느님과 눈 맞춤도 없이 혼잣말을 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뭔가 못마땅하여 군소리만 하지는 않겠지요. 위선자들처럼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십니다.
사실 우리가 올 때 빈손이었고, 죽음 앞에 설 때 빈손으로 돌아갈, 비천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주로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 서서 드러내며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두고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라고 하시며,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이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1.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고, 오히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그러시며 2. 아버지께서는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기에 다른 민족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거나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3. 교만한 바리사이의 기도가 아닌 자비를 청하는 세리의 기도. 자신을 높이는 기도가 아닌 낮아지고 낮추는 기도가 올바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6, 5-8; 루카 18, 9-14)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올바른 기도는 관습적이고 의례적인 기도와는 다릅니다. 특히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당신의 기도는 정감적이며, 신뢰와 사랑이 담긴 기도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기도.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웃과 공동체를 더욱 사랑을 위한 기도이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웃과 공동체에 나를 내어놓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모두의 ‘압바’
주님께서 아버지와 하신 대화는 제자들에게 처음 시작부터가 충격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압바”라고 부르라고 가르치셨지요. 유대교의 관습과 전례에 익숙해져 있던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신원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 82 [81],6).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의 신성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믿는 이가 지니는 신적인 권위는 하느님께서 보증하셨음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압바’의 의미. 그 관계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은 저 멀리 계시는 존재가 아니지요.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 82,2)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신이 되고 신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시려는 것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 너무나도 가까이 계시기에 보이지 않는 분. 우리 모두의 안에 숨어 계시는 분입니다.
나만의 ‘압바’가 아니라, ‘모두의 압바’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분에게서 비롯된 형제자매들이며 그분은 한 분이신 아버지이십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요. 미래에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모두의 ‘압바’이십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하신 좋은 일’, 아버지의 일, 그 나라를 위한 일, 그분의 뜻과 하나가 되는 일을 해야겠지요.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29).
나아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한 아버지와 함께 서로 사랑하는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관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관계는 최종적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감히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지요. 사랑의 관계는 교부들(T. 아퀴나스의 기도)이 익히 말씀하신 펠리컨의 비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사랑의 관계는 매일 우리를 먹이고 살리시는 일용할 양식. 생명의 빵으로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며.
그러므로 우리의 몫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압바’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 깊은 ‘펠리컨’이 그랬듯이, 이웃을 내 몸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며, 아버지가 자비로우시니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일이겠지요. 또한 ‘고통’이나 ‘시련’의 ‘유혹’이 없어지기를 청하기보다 그것들의 유혹을 딛고 일어나 성장하고 성숙해지기를 사랑의 펠리컨은 원하십니다. 다만 저희의 힘이 부족하오니 ‘악’에서 구하시기를. 아버지께 청하며.
“사랑 깊은 ‘펠리컨’ 주 예수/ 더러운 저 당신 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 방울 만으로도/ 온 세상을 구해주셨네.”(T. 아퀴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