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더 사랑하기에

by 진동길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습니다. 때가 찼고 마지막 준비를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지요. 그 사랑은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마지막 만찬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사뭇 엄숙했는데, 제자들도 큰일이 일어날 때가 찾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분이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던 것이지요.


제자들도 그랬지만, 베드로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전통 안에서 세족(洗足).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종이 주인에게, 부인이 남편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행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역할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만일에라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조상들의 전통을 무시하는 일이자 훼손하는 일이며, 위계질서를 흩트리는 일이었습니다.


주인이 종의 발을, 남편이 부인의 발을, 아버지가 아들의 발을 씻어주는 일은 전통과 율법을 고수하는 이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지탄받아 마땅한 몰지각한 행위와 다르지 않았지요.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담담하게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발 씻김을 받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매우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벗과 벗 사이에도 서로의 발을 내어 맡긴다는 것이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발은 우리의 몸 중에서 타인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 자주 씻어도 금방 더러워지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양말로 가리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맨발로 다녔기 때문에 더 쉽게 더러워졌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발을 닦아주는 것은 아랫사람의 입장에서는 규범과 풍습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참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발 씻김의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의 더러워진 곳, 보이기 싫고 감추고 싶어 하는 자리를 씻어주어야 합니다.


위와 아래를 따지는 권력과 허영심과 과시욕의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종과 주인의 의미가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가'에 따라 그 위치가 바뀌고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복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통적 사회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십니다. 인간의 권위와 힘의 역학적 관계를 다시 정립하십니다. 사실 혁명이었습니다. 쇼크였고 문화적 스캔들이었지만, 사랑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그 깊은 뜻을 받아들였는지 예수님께 말씀드리지요.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그분은 스스로 모든 이의 종이 되시어 가장 더럽고 보이기 싫은 구석을 물로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이 순간 그분은 미완의 정결례를 완성하셨습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예식으로 그쳤던 정결례를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단순한 의미의 정결례가 화해의 성사적 의미. 곧 하느님의 일이 되었습니다. 모든 성사가 다 그렇지만 발 씻김 예식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와 품위를 높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 됨은 그분의 사랑에서 시작되었고 그분께서 우리를 섬기고자 하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오늘 다시 깨닫게 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1,5; 1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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