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길과 가야 할 길은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박노해 ‘겨울 사랑’,「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올리브 산 겟세마니 동산에서 -
그날도 오늘처럼 벚꽃 잎이 비눗방울처럼 날리고 있었겠지. 아마도.
때가 차고 밤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비장한 마음으로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나할 키드론: נחל קדרון: 혼탁한,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건너편으로 향하셨는데, 예부터 이 계곡을 흐르는 물이 흙빛인 데서 그 이름이 키드론이 되었단다.
예수님의 수난 여정이 이 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어지럽고 혼탁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수난이 이제 곧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 있으셨을 거야.
여호사밧의 골짜기(에메크 요사파트: עמק יהושפט)라고도 하는 이 골짜기는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이 올리브 산 위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 사후에 여기에 묻히기를 원했고, 때문에 예부터 이곳 올리브 산기슭 키드론 골짜기는 무덤 지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단다.
성경이 전하는 대로 이곳에는 서민 공동묘지가 있었고 요시야가 아세라 목상과 그 제단을 이곳에서 태워 가루로 만든 다음 묘지에 뿌렸지.(2 열왕 23,4-6.) 또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광야로 갈 때에도 이 골짜기를 건너갔단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 한 많은 골짜기를 지나 겟세마니(Γεθσημανῆ: 기름 짜는 틀) 동산이 있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는데.
올리브 산은 예수님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 곳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나(루카 19,37.) 예루살렘의 멸망을 두고 우시거나 예언하실 때, (루카 19, 29.41; 마르 13,3; 마태 24,3.)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나(루카 11,1-4) 간음한 여인 사건을 해결하시기 전에도(요한 8,4.) 그러셨듯이 그분은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이곳 올리브 산에서 묵곤 하셨지.(루카 21,37.)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실 때는 물론(마태 26,30; 마르 14,26; 루카 22,44), 승천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이곳 올리브 산으로 제자들을 부르셨단다.(루카 24,50; 사도 1,12)
특히 올리브 산 아래에 있는 겟세마니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려고 여러 번 찾던 곳이어서 그분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지.(마태 26,36; 루카 22,39.)
이날 밤 예수님께서는 여덟 제자를 동산 어귀에 남겨두고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신 후, 다시 홀로 그들보다 더 깊은 곳으로 가셔서 피와 땀을 흘려 기도하시며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셨는데.(마태 26,36.39.) 그분이 기도하시는 모습은 마치 올리브에서 기름을 짜듯 하셨지.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 38.)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올리브 산 겟세마니 동산에서.
- 죽음의 골짜기에서 -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앞에서 생명과 그 삶이 더욱 소중하게 빛납니다. 특히 많은 이들의 구원을 위한 희생은 세상의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지요.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죽음을 묵상합니다.
‘죽음’이 인생의 끝이 될 수 없다는 믿음과 버림받은 것 같고 실패한 듯한 삶이지만, 이 여정이 결코 헛될 수 없다는 확신은 우리 삶의 내용과 인생관을 새롭게 하는 힘이 되지요.
또 영원한 생명을 뒷받침해 주는 증언들은 매일매일 우리 삶의 밑그림을 충실하게 그려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든든한 머릿돌과 같습니다.
특히 지금의 내 삶이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무상으로 얻어진 덤의 삶이자 영원을 보장하는 약속에 뿌리를 둔 삶이라면 매 순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이 지금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믿음은 오늘, 내 삶의 걸음걸음에 복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우리의 걸음을 축복과 은총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건강한 믿음은 자동차의 서스펜션처럼 예기치 못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충격을 흡수해 주고 하느님과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그 접지력을 확보해 주지요.
건강한 신앙은 한 자아의 영혼과 육신의 회복 탄력성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형이상학적 구조물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사랑의 선물이자 은총이며 축복이고 우리의 힘이자 사랑의 원천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