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다시 일어서다
엄마가 점심을 준비하려고 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쌀을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엌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가 밥솥을 보더니 다급하게 엄마를 부릅니다. 그러면서 조막손으로 밥솥에서 쌀을 건져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큰일 났어요. 쌀이 물에 빠졌어요. 죽을지도 몰라도 빨리 건져내야 될 것 같아요."
이를 본 엄마가 웃으면서 사색이 된 아이를 달래며 말해줍니다.
"다정아. 너의 눈에는 이 쌀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죽는 것이 아린다.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지."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모든 게 궁금한 아이는 한꺼번에 엄마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음... 사랑 때문이지. 이 쌀이 변해서 밥이 되어야. 그 밥을 먹은 다정이가 건강해지고 큰 사람이 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다정이가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겠지."
"아! 사랑. 더 큰 사랑. 그렇구나. 쌀아. 고마워. 너희의 사랑을 이제 알겠어. 나도 밥 많이 먹고 너희들이 원하는 더 큰 사랑을 할게. 엄마, 엄마도 고마워. 쌀이 사랑으로 밥이 될 수 있게 해 줘서."
세례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부활의 삶입니다. 부활의 삶은 성사적 삶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삶이 성사적 삶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과 절망 가운데에서 다시 일어나 나누어지고 쪼개어져야 하지요. 한 번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야 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과 표지입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지금-여기’에서 실제로 재현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세례를 받으려고 하느님을 찾아오신 여러분은 하느님께 뽑힌 이들이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무덤으로 옮겨지셨듯이, 거룩한 성세대로 인도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당신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이어서 여러분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신앙 고백을 하고 물속에 세 번 잠기고 거기서 세 번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신 하느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이 성사로 여러분은 이제 무덤 속에서 3일간 계셨던 그리스도의 묻히심을 재현한 것입니다.
이 성사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같은 순간에 죽었고 또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구원의 물은 여러분에게 무덤도 되고 어머니도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죽음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고 그분의 부활로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으며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한 순간이 두 목적을 동시에 성취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기이하고 놀라운 상황입니까? 우리는 실제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묻히지도 않았고 실제로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다시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께 앞에 이 성사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고 구원의 성사입니다.
한 사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모든 일은 성사되어실제로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참으로 묻히셨으며 참으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총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것을 실제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한한 사랑입니까! 그리스도의 순결한 손과 발은 못으로 찔리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도 고통 중에 있지만, 나의 고통을 그분의 고통과 일치시킴으로써 우리 생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이제 성사적 은총으로 들어 높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고통이 이제 누군가에게 또 다른 구원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우리는 스승의 삶이 그러했듯이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변화되어 절망과 좌절의 지점이 끝이 아니고 다시 시작하는 출발의 시간으로 매 순간 변화될 것이기에 부활의 삶은 성사적 삶이자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삶으로 바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다시 시작하는 삶 속에서 그분이 나와 함께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심을 선포하는 삶말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삶은 성사적 삶입니다.(참조: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인 세례, 예루살렘 ‘교리서’에서)
여기서 성사란 “외적 행위로 나타나는 증표로, 인간의 감각이 도달할 수 없는 감추어진 하느님의 은총이 감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신앙 안에서 성장의 단계마다 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특별한 예식을 통하여 더 깊은 성화의 단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는 표지로 드러내는 특별한 예식을 성사(聖事, Sacramentum)라고 합니다.
교회가 베푸는 성사의 의미가 이렇다면 세례로 다시 태어난 자녀는 비록 내 아픔이 커서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때에도 그분은 날마다 나를 다시 일으키시는 분. 세례로 죽음으로부터 건져내셨고 다시 태어나게 하셨고 이제는 사랑의 삶, 기쁨과 평화의 삶, 복음을 선포하는 삶인 성사적 삶으로 이끌어주심을 믿고 고백하고 성사적 삶으로 사는 이들이어야 합니다.
시작이시고 마침이신 그분께서 내 인생. 내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함께하십니다. 그분이 내게 녹아들어 오셨습니다. 내 역사를 성사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사이에 그분이 계십니다. 임마누엘이 함께 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한 가지만이라도 기억합시다. 세례로 다시 일어 선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립시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갑시다. 사랑이신 분이 우리를 부르셨듯이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의탁하며 우리 함께 천국으로 그 삶으로 나아갑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