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마르 11,13.)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화과나무는 율법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로 존중되었습니다. 평화와 안정, 번영의 표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언자들은 무화과의 열매를 통한 비유를 통하여 예언을 하였는데, 무화과나무가 꽃 피고 수많은 열매를 맺음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축복해 주는 것으로(요엘 2,22 ; 하깨 2,19), 반면에 메마르고 열매 맺지 못함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간주되었습니다.(예레 5,17. 8,13 ; 호세 2,14 ; 아모 4,9 ; 요엘 1,7.12)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무화과나무는 곧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구체적으로는 성전과 율법학자나 수석 사제, 백성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성전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오늘 저주받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은 화려하게 꾸몄으나 하느님의 의로움과 그 현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하나 껍데기만 남아있는 모습이었고 바리사이인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도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는 저주를 성전에서는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마르 11,15).
한편 오늘 복음의 구조도 특이합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 일화에 앞서 ‘무화과나무의 저주’ 일화가 나오고, 성전정화 일화 후에는 곧이어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의 교훈’ 일화가 뒤따릅니다. 성전정화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 영의 결핍과 저주
“‘나의 집(οἶκος)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마르 11,17.)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집(οἶκος)의 의미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건물house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식구, 가족을 뜻 하기도 하며 더 깊은 의미로는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요한 2,21.)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식물이나 겉은 그럴듯한데 그 속이 상한 열매, 혹은 율법학지들과 바리들처럼 위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빗대어하시는 말씀이지요.
교부들은 영성 생활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하면서 죄의 잉태를 '선한 영(Spirit)'의 결핍에서 찾았습니다.
축구를 보다 보면 스트라이커가 골대 앞에서 똥볼을 찰 때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스트라이커는 어떤 상황에서도 골을 넣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축구를 관람하고 있는데, 믿었던 스트라이커가 골대 앞에서 똥볼만 차면 관객들은 물론 감독한테도 좋은 소리는 못 듣겠지요.
결국 그는 퇴출당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마르 11,14.)
우리 역시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스스로 정화하지 못하면 오늘 무화과나무나 성전과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 언제 어느 때든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그분의 부르심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20)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 13,8)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