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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06. 2023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생명의 성사


죽음을 각오한 사랑

어느 날, 한 가족이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7살 된 아들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응급수술에 급히 피가 필요했는데, 아들과 같은 혈액형은 딸밖에 없었습니다.


다급한 아빠가 5살 된 딸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오빠가 급히 피가 필요한데 네 피를 좀 줄 수 없겠니?” 딸은 눈물을 머금고 곧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아빠가 침대에 누운 딸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 덕분에 오빠가 살았다!”


그 말을 듣고 딸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저는 언제쯤 죽어요?”



내 안에 그리스도의 몸이 나와 함께 부활하셨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지요. 만일 그랬다면, 그때 당신은 사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내어놓았을 때입니다.



머리로 한 사랑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48-51)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 6,60. 63. 65-66.)



성 안토니오와 노새

성체의 기적은 13세기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를 통해 완고한 이교도를 회개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보노닐로’라는 이름의 이 이교도는 ‘이교도들을 때리는 망치’라는 별호를 가진 ‘성 안토니오’의 설득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보노닐로는 그의 옆에 서 있던 노새만큼이나 고집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노세에게 시선을 주면서 보노닐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만약에 이 노새가 무릎을 꿇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 조물주께 예를 드린다면 이단을 버리겠느냐?”


이교도는 ‘몇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말한 조건이란 이랬습니다. 이틀 동안 노새에게 먹이를 주지 말며, 사흘째 되는 날에는 그놈을 넓은 운동장으로 끌고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운동장 한옆에는 구미를 돋우는 신선한 먹이를 많이 놓아두고, 다른 한 옆에는 성체를 안토니오가 들고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괴상한 시험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보노닐로는 조소하는 얼굴로 배가 몹시 고픈 노새를 끌고 도착했습니다. 노새가 그동안 굶었으니 식욕이 왕성해져 먹이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가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한편 안토니오는 연이틀 동안 이 이교도의 영혼을 위해 주님께 간청했습니다. 하느님은 이 열성적인 종의 간청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끈이 풀리자 노새는 주저하는 빛도 없이 안토니오 성인 쪽으로 다가가더니 성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모습은 성체 앞에 경건하게 조배 하는 태도였습니다.


이 사건은 이를 본 고집 센 이교도 보노닐로는 물론 그 운동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모두를 당혹게 하는 성체의 기적이었습니다. 고집 센 이교도 보노닐로도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그동안 성체를 모독했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릇’-몸(בְּשַׂר: σῶμα)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몸’[바사르(בְּשַׂר): 소마(σῶμα)]은 ‘살, 인간, 인간관계, 혈연관계’를 말합니다. 곧 육체뿐만 아니라 ‘사랑의 사귐과 친교’를 말하지요.


‘피’[담(דָּם); 아히마(αἷμα)]는 ‘생명’을 말합니다. ‘새로운 계약’, ‘일치와 유대’를 일컫지요.


우리의 '몸'(그릇)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담깁니다. 이처럼 위대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이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기적이 또 있을까요?


하느님의 거룩한 ‘몸’과 ‘피’가 내 안에 담기는 일입니다. 아니 내 ‘몸’과 하느님이 하나가 되는 기적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 ‘온전히’, 그리고 ‘오롯이’ 나와 하나가 되고자 하십니다.


성체성사는 낡고 죄 많은 인간이 새롭게 창조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와 온전한 ‘일치’이자 ‘사귐’이요. 거룩한 현존 안에 ‘머무름’입니다. 신비스러운 몸이 죄 많은 몸과 사랑으로 하나 됨이지요.



사랑이신 성령의 힘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내 안에서 다시 새롭게 흐르려 합니다. 놀랍고 신비로운 사랑이 새로운 생명으로 흐르려 합니다. 이해보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하느님처럼 사랑한 뒤에 이해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신비로운 신적인 사랑을 믿을 수 있기를.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이해하기보다 먼저 사랑할 수 있기를. 사랑은 사랑하는 이 안에서 깨어나는 기적을. 그 신비를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다시 일으킵니다. 사랑을 앞세운 이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기에. 그것은 기적입니다.


“우리가 영성체에 임할 때 모두 같은 주 예수님을 모십니다. 그러나 다 같은 은총을 받고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차이는 준비된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성체에 임하는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 더 많은 유사성이 있을수록 영성체의 결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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