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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pr 15. 2024

내부 수리 중

나도 아직 미결수

 


       

몽둥이를 쥔 사나운 사냥개는 없었다

양을 표적으로 삼는 승냥이도

토끼를 노리는 날카로운 발톱의 독수리도     


없었다.     


지난밤 내 잠자리를 덮친

괴상한 프랑켄슈타인도

공포영화에 나오는 처키도     


없었다.     


상상 속 천국이 없는 것처럼

거기서 나는

포장지만 다른 한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진동길)


  담장 안에도 벚꽃 지고 철쭉이 피었겠지. 그 꽃들도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저 혼자 피지는 않았을 거야. 꽃잎이 붉게 물들기까지 견뎌내어야 했고, 버텨내야 했던 무서리 내리는 밤들과 땡볕이 있었을 테니까. 철쭉도 나도, 저 혼자, 저절로 물들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꽃잎을 예쁘고 붉게 물들이는 주인이 있을 터이고, 또 그렇게 함께 피고 지는 꽃들이 있어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피었겠지. 그렇지.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거니까.     


  나도 아직 미결수

  오늘은 봄비가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날이다. 나는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도록 서두르는 마음을 다독이며 교정시설로 가는 걸음을 재촉한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야 마음이 편하다.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가려진 커튼처럼 나도 내 앞일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갇혀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 처지도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알 수 없다. 다행히 나는 아직 천둥과 벼락이 한꺼번에 내리치는 날을 겪어보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아직 태풍과 벼락을 한꺼번에 맞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혹여 그런 날이 오면 나도 어떻게 될지. 내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다만,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가슴 아픈 상처들과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난동 부리지 않고 사랑의 열매로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애쓸 뿐이다.


  어떤 날에는 미결수와 기결수가 함께 미사를 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미결수들에게 먼저 눈이 간다. 미결수들의 얼굴과 표정, 행동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색만큼이나 기결수들과 달라 보인다. 성가를 연습하고 있는 기결수들과 미결수들을 바라보다가 혼자 궁금해한다. 유죄 판결을 받고 형이 확정된 형제들. 저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고, 또 어떤 감정들이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 던져진 미결수 형제들. 왠지 어설프고 어색한 모습이 역력한 사람들. 저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감정들일까?


  내 눈길은 몹시 불편하고 어색해 보이는 미결수 형제들의 어깨를 타고 내 안에 들어와 살핀다. 내 안에도 끝없이 뿌리를 뻗어내리는 두려움과 분노. 유령 같은 걱정과 불안, 좌절과 절망의 싹들이 보인다. 아직은 물기를 먹지 않아 시들어 죽어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활개를 치고 되살아날 수 있는 감정들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마주할 때는 언제든 활화산처럼 폭발해 버릴 수도 있다. 내 안에도 여전히 불발탄이 살아 있다.


  수용시설에 익숙하고 자연스럽기까지 한 기결수들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정들을 내 안에서 찾아내 읽고 있으면, 나도 미결수와 다르지 않은 처지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다. 맞다. 나도 아직 미결수다. 아직은 나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미결수다. 행여 누가 알아볼까 감추고 싶은 죄도 많다. 기결수로 살아가야 하는 사건들도 있었다. 이미 용서를 받고 화해를 했을 뿐,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어두운 사연은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그렇다. 나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훌륭하지는 못하지만, 죄인이라는 낙인은 찍히고 싶지 않은 나도 아직 미결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마음은 윈도 브러시처럼 왔다 갔다 한다. 그 맘을 알겠다는 듯. 봄비가 닫힌 창을 두드린다. 내게 할 말이 있다는 듯 투명한 마음의 창을 두드린다. 우리는 언제나 봄비를 기다린다. 나도 누군가에게 봄비처럼 다가가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른 가슴에 비처럼 내려앉고 싶다. 폭우나 태풍이 아닌, 희망과 새로움을 속삭이는 봄비가 되고 싶다. 이날에 새 꽃을 피게 하는 봄비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 남겨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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