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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3장: 마리안과 미리암의 만남

by 진동길

폭력과 스캔의 시작


죄수 마리안.png


배스토니 교정시설로 이송된 마리안(Marian)은, 도착하자마자 극심한 폭행과 가혹한 스캔 절차에 시달렸다.


신분 확인이다.”


교도관들은 거친 손놀림과 모멸 어린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마리안의 손목에는 “-M585959r9-r”라는 식별번호가 선명하게 찍혔다.


어딘가에서 전기 충격봉이 번쩍이자, 금속 고리에 매달린 레플리칸트 신체가 심하게 떨렸다. 이어지는 전자 스캔은 감정 회로와 인공 혈액 순환체계까지 샅샅이 조사하는 식이었다.


“너는 이제 ‘알 나인’으로 불린다. 알아들었나!”
대답이 없자, 잔혹한 주먹이 바로 날아들었다.


“알겠나? ‘알 나인’?”

“네… 알겠습니다.”


몇몇 교도관들은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레플리칸트 주제에 감정이 있다고? 웃기는군.”
“저건 그냥 고급 기계지. 연구실로 넘겨서 싹 해부해 보는 게 낫지 않아?”


마리안은 숨을 쉴 때마다 온몸을 파고드는 통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더욱 견딜 수 없는 건, 모두가 그녀를 사람 이하로 깔보는 잔혹한 시선이었다.


전기장 벽 독방

각종 검사가 끝난 뒤, 마리안은 전기장 벽이 설치된 좁은 독방에 던져지듯 갇혔다. 무심한 교도관 한 명은 스캐너로 그녀의 인공 혈액 정보를 태그 찍듯 기록했다. 그 차디찬 행동에, 마리안은 문득 허무자괴감이 치밀었다.


‘정말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기계인 걸까…?’


전기장 벽 너머로, 재소자들의 수군거림과 비명 소리가 교차했다. 누군가는 겁에 질려 울부짖고, 또 다른 이는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이 시설이 도살장처럼 느껴지려는 바로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슬며시 들려왔다.


미리암과의 첫 대화

철제문이 쾅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년 여성 한 명이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그녀는 교도관도 폭력배도 아닌 듯한 낡은 재소복 차림으로, 감시 드론을 능숙히 피해 걸어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리안… 맞나요? 전 미리암이에요. 수감번호는 ‘0-P673234est’. 보통 에스트라고 부르죠.”


잠시 뜸을 들인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여기선 사람으로 태어났든 아니든, 결국 함께 버텨야 해요.”


독방 안쪽에서 고개를 든 마리안은, 적의도 연민도 아닌 단단한 위로가 담긴 눈빛과 마주쳤다. 그 말 한마디에,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곤란하지 않으세요? 저와 어울리면… 다른 재소자나 교도관들이…”

마리안이 중간에 망설이며 말을 멈추자, 미리암이 잔잔히 미소 지었다.



“여긴 이미 지옥 같아요. 지옥에서 눈총 몇 번쯤, 아무것도 아니죠.”


그 담담함에, 마리안은 문득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의 레플리칸트 정체를 알면서도, 기계 이상의 존재로 대하는 사실이 이렇게나 간절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본 미리암은 “저녁 식사 때 좀 더 얘기해요”라며 작게 속삭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처럼, 혹독한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마리안은 미리암과 처음 연결되었다. 레플리칸트에 대한 혐오와 멸시가 만연한 교정시설에서, 이 짧은 대화는 마리안에게 작은 숨구멍이 될 수도 있었다. 이제 막 스파크가 튀기 시작한 두 사람의 만남이, 앞으로 어떤 전개로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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