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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8장 거대한 감시와 파괴, 흔들리는 권위

by 진동길

거대한 감시, 은밀한 충돌

배스토니 교정시설 실험실 한쪽에선 여전히 전기 장치들이 섬뜩한 소음을 내며 꺼졌다 켜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고통으로 기진맥진한 마리안의 몸이 메커니즘에서 분리되어 축 늘어져 있을 즈음, 소장 프레이저의 통신기가 거칠게 울렸다. 늘 그렇듯 보안과(保安課)였다.


“소장님, 보고 드립니다. 에데이 샤하르(Edei Shachar) 세력이 배스토니 시설로 잠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부군 측도 이미 이들을 추적해 왔고, 지금 ARGOS(아르고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의 이름이자 지능과 충성심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에서 유래 한 개 품종을 이른다. 언제나 드론과 함께 운용되는 비행선) 감시 시스템이 교도관들의 무선 및 위성 정보를 송신 중입니다.”


“ARGOS…”


프레이저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군에서 사용하는 이 초대형 감시 장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늘에서 모든 동선을 추적해 목표물을 포착하면, 미세한 흔들림조차 감지해 내는 무시무시한 시스템. 보안과 직원이 덧붙였다.


“정부군이 은신처까지 확인했답니다. 지휘부가 은신처를 포함해 불순분자 전부를 소탕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 작전에 협조하라는 명령이긴 한데…”


프레이저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지휘부의 ‘전면 섬멸’이라는 표현이 눈앞을 스쳤다.


‘결국 또 누군가가 무참히 희생되고 말겠군.’ 그는 속으로 씁쓸한 생각을 짚었다.


하지만 바깥으로 드러난 그의 표정은 차갑고 건조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써 눈빛을 가라앉혔다. 동요를 드러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프레이저는 정부군을 위해 일한다기보다는, 역으로 정부군에 대항하기 위해 교정시설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가 마리안을 혹독한 훈련에 투입해 온 진짜 목적 역시, 미래의 반정부 전력으로 키우려던 숨은 의도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들킬 수는 없었다.


“알았다. 우선… 우리 시설 방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전해라. 교정국 상부에는 이렇게 보고해: ‘인력이 부족하니, 치안 부대 일부만 정부군 작전에 협조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충분하겠지.”


보안과 요원은 “예, 소장님” 하며 물러났지만, 그 얼굴에는 의아함이 서려 있었다. 얼마나 큰 규모로 은신처를 쓸어버리느냐에 따라 필요한 병력이 달라질 텐데, ‘소수만 파견’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였다. 그러나 소장 프레이저가 내린 결정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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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 그리고 파멸

한편, 지하 수로를 뚫고 배스토니 시설 밑으로 잠입한 제이드(Jade)와 동료들은, ARGOS 감시 시스템의 위력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태였다. 거대 레이더와 정찰 드론을 거느린 ARGOS는 상부에서 모든 신호를 갈취해 이들의 동선을 읽고 있었다.


“이상해. 아무리 교란 장비를 써도 상대가 움직임을 전부 간파하는 것 같아….”

피터가 숨을 헐떡이며 낮게 말했다.

렉스와 린 등 동료들도 예감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터널 안에서부터 교도관 부대와 소규모 로봇 병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반응했고, 간신히 수로를 통과해도 또 다른 함정이 대기했다. 밖에서 터지는 총성과 폭발음이 어느새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해. 마리안을 구하러 온 거잖아.”

제이드는 자신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다그치듯 외쳤지만, 이미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한 지하 구역은 아수라장이 되어 갔다.


“젠장…!”

렉스가 결사의 각오로 교도관 몇을 제압하는 사이, 린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피터가 허둥지둥 그녀를 부축해 보려 했으나, 곧 드론 몇 기가 뒤를 덮쳤다. 교전은 순식간에 불리해졌다.


그때, 상층부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이 지하 수로 전체를 흔들었다. 정부군이 배후 은신처를 향해 대대적인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ARGOS가 포착한 좌표를 바탕으로, 폭격과 동시에 무장부대가 들이닥친 모양이었다. 에데이 샤하르가 오랫동안 공들여 마련한 은신처는 일순간 파쇄음과 불길 속에 휩싸였고,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흩어지거나 전사했다.




소장 프레이저의 내심

배스토니 교정시설 통제실 내부. 전자 기기들의 잡음과 교도관들의 긴박한 보고가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소장 프레이저는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여러 통신망을 동시에 확인하고 있었다.


“에데이 샤하르 은신처 진압 중… 폭파로 건물 대부분 붕괴… 생존자 발견 안 됨….”


굵은 잡음 사이로 들려오는 보고 음성이 쏟아질 때마다, 프레이저는 무표정한 얼굴 너머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


(정부군은 결국 이런 극단적 수단만 고집하는군….)


마음속을 할퀴는 안타까움은 그러나 겉으로 표출되지 못했다.

그는 표면상으로는 이곳을 냉혹하게 지배하는 교정시설 소장이지만, 사실 그 속내는 전혀 달랐다.


(마리안을 충분히 훈련해, 그녀와 함께 체제를 뒤집어야 해. 아직은 때가 이르지만….)

생체 실험에 가까운 Aether Kinesis 훈련 역시 그 목적을 위해서였다. 지금 정부군이 저지르는 무자비한 진압 작전을 지켜보노라니, 마음 한구석이 얼어붙을 듯 차가워졌다.


프레이저는 시선 한쪽으로 모니터를 확인하며, 이미 잘 알고 있는 ‘정답’을 다시금 곱씹었다.

(‘본 시설 방어가 시급하다’는 명분으로 소수만 보낸다… 그럼 은신처가 완벽히 무너져도 몇몇은 탈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부하 직원에게 낮게 지시했다.

“스캔 상황은 계속 주시해. 침투 세력에 대비한다고 알리고, 더 이상의 대규모 투입 요청은 거절한다.”

“예, 소장님.”

부하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고, 그 짧은 대화 속에서 프레이저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미리 예상했듯, 은신처가 무너지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소수 생존자’가 틈을 타 빠져나갈 가능성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덕에 정부군이 진압을 더 강도 높게 밀어붙여 무수한 희생이 발생했어도, 완벽한 몰살은 피할 수 있었다.




실낱같은 생존

결국 정부군이 불도저처럼 몰아치며, 에데이 샤하르 은신처는 불길과 연기에 삼켜졌다. 건물 잔해 곳곳에서 울부짖던 비명은 금세 침묵으로 변했고, 상공을 맴도는 드론들은 엄호 사격으로 탈출로를 사실상 차단해 버렸다.


그러나 폭발 직전의 혼란 속에서, 제이드(Jade)와 피터(Peter)는 가까스로 반대편 수로를 통해 빠져나왔다. 틱틱—잔해 더미 속 여기저기서 불길이 튀고,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와중에도, 운 좋게 교도관들의 시선이 분산된 덕에 간발의 차로 살아남은 것이다.


“피터, 괜찮아?”

제이드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지치고 절망 어린 음색이 서려 있었다.

“숨은 붙어 있어… 하지만 우린 이제 어떡하지…?”

피터 역시 온몸에 상처투성이였고,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사방의 폭발음과 뒤섞였다.

함께 움직이던 동료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린과 렉스마저 끝내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현실에, 제이드의 가슴은 무언의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다. 한동안 할 말을 잃은 둘은, 잿빛 연기 속에 가느다랗게 남은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그 눈앞엔 또 다른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ARGOS시스템—하늘 어디선가 초대형 감시 장비가 레이더를 돌리며 이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적을 조금만 남겨도 발각될 위험이 농후했다. 둘은 텅 빈 지하 골목에서 헐떡이며 숨을 삼켰다. 비록 이 순간 간신히 살아남았어도, 언제 다시 치명적인 폭발이 덮칠지 모를 일이었다.




조용한 승리, 소장의 이중 계획

거점 파괴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군은 승리감에 도취한 듯했다. “불순분자는 모두 제거되었다”는 식의 보고가 줄지어 올라왔고, 교정시설 내부 또한 *“특이 동향 없음”*이라는 회신이 수시로 교차했다. 흡사 완벽한 작전처럼 보였다.


프레이저는 교정시설 통제실에서 여느 때처럼 차가운 기계음에 묻혀 있었다. 부하가 고개를 숙인 채 보고했다.


“현장엔 별다른 이상이 없는 듯합니다, 소장님. 군 측에서는 추가 지원을 요청했으나, 소장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시설 방어가 우선’이라 전했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프레이저가 입술을 굳게 다문 뒤, 부하를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리해서 병력을 뺄 필요는 없어. 배스토니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
“알겠습니다.”


부하가 나가자, 프레이저는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결국… 또 수많은 희생이 따랐군.”


눈앞의 모니터엔 무너져 버린 은신처 잔해 사진이 올라왔다. 새까만 잔해 더미 속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보고, 비명소리로 가득했던 상황… 그는 이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눈을 감았다 뜨며 최대한 냉담한 표정을 되살렸다. ‘상부에 대해선 역시 이런 식으로 굴어야지….’


관제 무전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보안 담당자와 나눈 대화가 다시금 귓전을 울렸다.

“소장님, 정부군에서 상황 종료 후 은신처 지역을 ‘불모지’ 처리하겠답니다.”
“당분간은 그렇게 두라고 해. 더 쓸데없는 피를 흘리는 일은 없어야지.”


표면적으론 차분하기만 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뜻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작 프레이저는 ‘소수라도 살아남았길…’하는 작은 기도를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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