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무모한 도전
에데이 샤하르(Edei Shachar)의 지하 은신처는 언제나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감돌았다. 폐허가 된 노바 앤젤레스 하층부의 지저분한 연기가 섞여 있어, 기계음과 인적 소음이 희미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평소의 정적이 아닌, 작은 열기가 곳곳에서 불쑥불쑥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배스토니 교정시설로 마리안을 구출하러 갈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제이드는 좁은 전등 빛 아래서 무기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총구 끝을 조심스럽게 닦아 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진입 경로와 해킹 루트로 가득 찼다. 피터는 서너 명의 동료와 함께 무너진 콘크리트 벽을 개조해 만든 임시 콘솔 앞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였고, 반투명 스크린 위에는 교정시설 하부 수로를 중심으로 한 지도와 각종 보안 데이터가 떠다녔다. 그녀가 지켜보던 찰나, 피터가 고개를 돌려 짧게 말했다.
“이제 거의 다 됐어. 우리 바깥 지원팀이 감시 드론을 교란시키는 장치를 돌릴 거야. 그럼 우리가 움직일 시간은 많아야 10분…. 길어도 15분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해.”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15분은 너무나 짧았다. 교도관과 무장 드론, 그리고 허를 찌르는 감시센서들—모두를 뚫고 마리안이 갇힌 구역에 침투하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빡빡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이 방법뿐이었다. 은신처의 사람들 사이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이대로 누군가가 또 희생되는 꼴을 볼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동료들이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기 시작하자, 제이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이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함께하겠다고 손을 든 이들은 각자 지쳐 보이거나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으나, 그 눈동자만큼은 분명한 결의를 담고 있었다. 레플리칸트이기에 누구보다 차별과 탄압을 잘 아는 제이드, 그리고 소리 없는 정보전을 치러 왔던 피터,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렉스, 응급 처치를 담당할 간호사 출신 린까지—각자의 이유와 상처를 가진 이들은 이제 한 팀이 되어 움직이려 했다.
설익은 전투 계획이지만, 이대로 시간을 더 끈다면 마리안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제이드는 무기를 손에 쥐고 사람들을 향해 작게 외쳤다.
“우린 여기서 더 머뭇거릴 수 없어. 드론이 교란되면 즉시 터널 쪽으로 진입해. 그 사이 피터가 보안 패널 해킹을 시도하고, 렉스, 넌 앞장서서 감시 드론을 처리해 줘. 린, 혹시 모르니 구급 세트 단단히 챙기고…”
이동 준비를 마친 이들은 술렁이던 은신처 구석진 방을 빠져나와, 지하 어귀로 이어지는 낡은 철문 앞으로 모였다. 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심스레 경첩을 밀어 열었을 때, 서늘한 공기가 코끝을 물어뜯었다. 길고 눅눅한 지하 터널이 앞으로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타락한 도시의 폐허 같은 풍경이 흐릿한 조명에 걸려 있었다. 이곳이 곧 배스토니 교정시설로 연결되는 수로의 입구였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하길 바랐는데…. 뭐, 이런 분위기도 익숙하긴 하지.”
렉스가 긴장감 속에서 농담을 던지자, 제이드는 미묘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어두워졌다. 곳곳에 부서진 금속 파편과 대형 기계부품이 흩어져 있어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유의해야 했다. 하나둘 숨죽인 걸음이 이어지자, 제이드는 본능적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감지장치가 반응할 테고, 그러면 순식간에 교도관들과 무장 드론이 들이닥칠 것이다.
짧은 시간을 쪼개듯 터널을 이동하던 중, 피터가 조그마한 태블릿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드론 교란 신호가 들어간다. 지금부터 십 분간이 우리가 쓸 수 있는 전부야.”
그 순간, 제이드와 동료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무언의 합의가 이뤄진 뒤, 마침내 마지막 폐쇄 철문에 달아 둔 자물쇠를 타격해 부쉈다. 앞으로 펼쳐질 길은 알 수 없는 함정과 감시가 득실거릴 테지만,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결의가 그들의 발을 재촉했다.
도심 지하의 악취와 낡은 배관들이 얽힌 수로를 질주하는 동안, 제이드의 머릿속에는 떠올리기 싫은 과거 기억이 스쳐 갔다. 과거에 도와주려 했던 레플리칸트 동료가 끔찍한 방식으로 잡혀갔고, 결국 제이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도망쳤었다. 그런 후회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 이 길을 끝까지 뚫어야만 했다.
“젠장, 이쪽은 막혔네!”
렉스가 중간 지점에서 부식된 철판을 치우며 낮게 외쳤다. 피터는 재빨리 반대편 작은 터널을 가리켰다. 우회로를 찾느라 몇 초를 허비하자, 십 분의 타이머는 절망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제이드의 마음속에서는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는 불안감과 그래도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뒤엉켰다.
“마리안을… 구해야 해.”
제이드는 꽉 다문 입술 사이로 간신히 말을 뱉으며,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타인을 지켜내는 순간이 오길 바랐고, 그 대상이 지금 고통받는 마리안이라면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동료들 역시 그녀를 뒤따르며, 바닥에 고이는 썩은 물웅덩이를 밟아 속까지 젖어들었다.
결국, 몇 번의 우회와 짧은 교전 끝에 간신히 수로 끝자락이 보였다. 그곳을 뚫고 나가면 배스토니 교정시설 지하로 연결되는 낡은 문이 있을 터였다. 문제는 그 문 하나를 열기 위해서라도 피터가 위험을 무릅쓰고 구형 보안 패널 해킹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교도관이나 드론이 나타나기 전에 얼른 작업을 마쳐야 했고, 그 후에도 어떤 참상이 기다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심장에서는 두근거리는 박동이 또렷했다. 뜨거운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으며, 제이드의 손가락은 차가운 총기 손잡이를 더욱 세차게 움켜쥐었다. 비록 폭발물이나 완벽한 전술 장비를 갖추진 못했지만, 서로를 신뢰하는 팀워크와 간절한 염원이 그들을 버티게 했다.
머잖아 기계 패널이 열리고, 짧은 경고음이 터져 나오면 본격적으로 교정시설 내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제이드는 다시 한번 호흡을 고르고, 동료들을 돌아봤다. 예전 같으면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밀려들었겠지만, 지금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확고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좋아, 피터. 준비됐으면 열어.”
어쩌면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가 진짜 시작이겠지만, 이들은 이미 결심을 마쳤다. 짧게나마 시간의 압박이 귓전을 때리는 와중, 제이드는 속으로 마리안이 살아 있으리라고, 그리고 버텨 주리라고 기도하듯 되뇌었다. 무언가가 견고한 철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달리는 발걸음을 멈출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지하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제이드와 에데이 샤하르 동료들의 도전이 이정표도 없이 힘차게 이어졌다.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이름대로, 이들은 마치 빛이 전혀 없는 심연에서도 희미한 등불을 찾기 위해 전진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등불이, 마리안을 지옥에서 꺼내 올 기적의 불씨가 되리라 믿으며, 거친 숨을 고르며 철문 앞으로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