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숨죽인 추격, 불붙은 결의
제이드(Jade)와 피터(Peter)
잔해와 화염이 뒤섞이고 귀를 찢을 듯 반복되는 폭발음과 매캐한 연기를 뚫고 지하통로를 질주했다. 노출된 철근과 부서진 기계 부품들이 발목을 붙잡으려 들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윙윙—드론 엔진음은 끊임없이 그들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젠장, 아직도 쫓아오는 건가?”
피터가 진득하게 흐르는 땀을 닦으며 헐떡였다. 온몸에 난 상처가 시뻘겋게 벌어져 통증을 호소했지만, 멈춰 설 틈은 없었다.
“아르고스(ARGOS) 시스템이 우릴 포착한 이상, 숨 쉴 틈도 없어.”
제이드의 목소리는 건조하게 갈라졌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눈을 따갑게 찔렀지만, 그녀는 빛을 깜박이며 시야를 확보하려 애썼다.
“이 근방에 교도관들까지 몰려올 거야.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야 해.”
피터는 잔해 더미에 걸려 비틀댔고, 겨우 균형을 잡고 나서야 참았던 신음을 내뱉었다.
“린과 렉스… 다른 애들은…?”
“찾아볼 수도 없었어. 이미 전부…”
제이드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의 시야엔 붉게 비치는 화염의 흔적이 아른거렸다. 천장에 매달렸던 콘크리트 덩어리는 바닥을 덮었고, 녹슨 배관에서 흘러나온 누런 물이 웅덩이를 이루는 모습은, 이 지하가 이미 생지옥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래도, 넌 살아 있잖아. 나도… 이렇게 숨을 쉬고 있고.”
피터가 깨진 철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뜨며, 겨우 입술을 달싹거렸다.
“우리… 정말 탈출할 수 있을까?”
“탈출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제이드는 목마름을 억지로 삼키며, 녹슨 철근 사이로 열린 틈새를 살폈다.
“마리안… 그녀가 정부군에게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우린… 어떻게든 다시 기회를 만들어야 해.”
그 말에 피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철근 부러지는 소리나 윙윙—드론 엔진음이 가까워질 때마다,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재빠르게 숨을 죽였다. 지금은 목마름도 고통도 사치였고, 방심하면 곧바로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상층부 — 정부군의 반응, 어둠 속 총공세
도시 상층부는 여전히 폭발로 인한 연기와 검댕이 뒤엉킨 채, 잔해 속에서 어지러운 불꽃이 꺼졌다 살아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고층 빌딩 사이로는 드론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건물 외벽을 스치는 LED 경고등이 붉은빛을 쏘아 올릴 때마다 공기 중의 먼지가 섬뜩하게 일렁였다.
그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정부군 지휘본부는 분주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두꺼운 방탄유리창 뒤에서, 지휘관들과 장교들이 쉼 없이 교전 보고를 주고받고 있었다. 덩치 큰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는 도시 전체가 정밀 지도 형태로 펼쳐져 있었고, 아르고스(ARGOS) 감시 시스템이 추적 중인 표적 좌표가 빨간 점으로 군데군데 번쩍였다.
“침투 세력 일부가 수로를 통해 도망쳤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우리 드론이 추적 중이나, 지하 구조가 복잡해 완전 포착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장교 한 명이 식은땀을 훔치며 보고하자, 창문 너머로 붉게 번쩍이는 불빛에 그의 얼굴이 스쳐 갔다. 발끝에는 방금 쏟아진 파편 먼지가 엉겨 붙어, 상황의 긴박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추가 병력을 파견하라. 감시망이 도달하는 모든 지점에 드론을 배치하고, 불법 이동이 포착되면 사살을 우선시해라.”
지휘관이 굳은 목소리로 일갈하자, 모니터 앞에서 대기하던 부관들은 일제히 동선 지도를 새로 그리고, 통신망을 통해 교도관 부대에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지도 위, 붉은 점들은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수로 아래로 숨어든 잔당’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에 맞춰 드론 편대가 재배치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지휘본부는 이미 “은신처 파괴는 성공적”이라 결론 내렸지만,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만큼은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다. 군데군데 도망친 잔당이 결국 다시 반격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스크린 위에는 “소탕 완료율: 84%”라는 글자가 번쩍였고, 그 옆으론 수색 열기가 더욱 가열되는 듯한 통신내역이 뜨고 있었다.
“아르고스 지표 스캔 결과, 저항 세력 둘의 생체 반응이 미약하게나마 잡힙니다. 수로 방향… 그리고 부서진 하부 구조 지역에서 접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통신병이 두꺼운 헤드셋을 벗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전송되는 화면에는 지하 매핑 데이터가 떨리는 노이즈와 함께 떠 있었고, 표적 아이콘이 불안정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당장 재차 폭격 가능성을 타진해 봐라. 필요하다면 지하 수로까지 무너뜨려도 상부는 용인할 거다.”
지휘관은 서슴지 않고 단호히 지시했다.
이미 전쟁과 초토화로 폐허가 된 도시 중 일부를 또다시 부수는 것쯤, 이들에게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완전 소탕”— 그 명령 아래선 윤리나 인도적 고려조차 사치였다. 드론 카메라가 전송해 오는 잔해 장면이 커다란 메인 스크린에 비쳤지만, 보는 이들 대부분은 이미 지친 듯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라. 마지막 한 명도 남기지 말 것.”
명령이 떨어진 순간, 지휘본부의 공기는 더 묵직해졌다. 외곽 방어선을 맡은 군인들이 속속 보고를 올렸고, 수많은 드론 엔진이 달그락거리며 ‘사냥’을 위해 재점화되었다.
거대한 도시를 덮은 어둠 속에서, 상층부의 정부군은 오직 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명령에 따른 완전 소탕.”소수의 생존자라도 있다면, 그들은 곧 결말이 정해진 ‘사냥감’이 되어 버릴 터였다.
소장 프레이저의 고민 — 배스토니 교정시설
정부군이 상층부에서 “완벽한 토벌”을 외치며 모조리 쓸어버리려는 작전을 펼치는 바로 그 시각, 배스토니 교정시설의 통제실 안은 사뭇 다른 공기로 뒤덮여 있었다. 창문 바깥으로는 먼 도심의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곳곳에서 경보음이 은은히 깔렸지만, 방 안은 필요 이상으로 차분했다.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깊은 밤바다처럼, 겉보기에는 고요해 보이지만 속은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로 가득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소장 프레이저는 모니터 앞으로 몸을 기울인 채 화면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은신처 파괴 후 정리된 보고서와 정부군 드론이 송신하는 지하 수로 영상이 교차 재생되고 있었다. 폐허만 남은 하수로, 그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반군의 미약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화면에서 프레이저는 숨조차 참아 가며 살폈다.
“소장님, 정부군에서 또 추가 지원을 요청해 왔습니다. 교정시설 병력을 파견해 달라는데…”
부하 직원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 목소리는 공포 반, 의문 반이었다. 프레이저는 아주 잠깐 눈을 굴렸다가, 이내 무표정한 낯빛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린 이미 교정시설 내부 통제만으로 벅차다. 인력을 더 낼 여유가 없어…라고 상부에 다시 전해라.”
차가운 대답이지만, 그 음성 뒤에는 사실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음을 부하들은 몰랐다. 프레이저의 눈동자는 여전히 모니터 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황량한 수로 영상을 보다가, 교정시설 하부 구조 지도를 번갈아 확인하던 그는 마음속으로 불편한 갈등을 곱씹었다.
(마리안을 훈련시킬 시간도 부족한데… 정부군은 왜 일을 더 키우려 드는 거지. 이렇게 무리하게 토벌을 진행하다간…)
그는 다시 모니터 위 붉은 점들을 짚었다. 교정시설 주위에서 움직이는 표시가, 반군 혹은 은신처의 생존자를 가리키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은신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 그가 야심 차게 계획했던 ‘체제 붕괴’의 불씨가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장님… 추가 보고 사항입니다. 하수로 내부에서 반군 흔적이 포착됐다는—”
“내버려 둬. 격리만 하면 되겠지.”
프레이저는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 순간, 굳게 다문 입술과 살짝 흔들리는 눈빛이 그의 양가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단 몇 초간 머물렀던 침묵 속에서, 그의 표정 뒤편에 기어드는 불안함과 안쓰러움이 언뜻 비쳤다.
(제이드와 피터… 혹은 다른 누군가라도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는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부하들과 정부군에게는 결코 들킬 수 없는 바람이었다. 누군가라도 무사히 이 끔찍한 수색망을 빠져나가야만, 그가 감춰온 반정부 계획의 마지막 희망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제실 안에 있는 다른 직원들은 소장의 표정 변화를 캐치할 새도 없었다. 다들 바쁘게 터미널을 들락거리며 교정시설 내부 통제와 정부군 요청 사이를 조율하고 있었다. 프레이저는 어느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보이는 붉은 경고등과 도시의 불길이 어른거리는 가운데, (이미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고…)하는 씁쓸한 현실이 입술을 타고 흘렀다.
그럼에도, 마리안에 대한 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이중적 사명감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정부군이 완전히 정리해 버리기 전에… 나는 마리안에게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차가운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눈동자를 잠시 응시한 뒤, 프레이저는 다시금 무표정한 얼굴로 뒤돌아섰다. 모니터엔 정부군 드론이 보내는 하수로 영상이 처량하게 재생 중이었다.
소장 프레이저는 도저히 균형 잡히지 않는 저울 위에 서 있었다. 한쪽은 체제의 꼭대기에서 권위를 행사해야 하는 ‘소장’이라는 역할이고, 다른 한쪽은 언젠가 이를 무너뜨릴 ‘반정부 세력의 편’이라는 내밀한 신념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부군의 완벽한 토벌 작전이 성공해 버리면, 그 모든 것—마리안을 통해 만들고자 했던 미래—가 물거품이 될까 두려웠다.
(그러니… 소수라도 제발 살아남아야 해.)
그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하며, 천천히 통제실 한가운데 놓인 콘솔을 눌렀다. 그리고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부하들에게 차분히 지시를 내렸다.
“내부 경계를 강화해. 시설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게.”
“예, 소장님.”
아무리 정부군이 강하게 몰아붙여도, 이곳 교정시설만큼은 함부로 병력을 빼갈 수 없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하수로 곳곳에서 파편처럼 살아남은 은신처 생존자들은, 혹시라도 틈이 생긴다면 그곳으로 도망칠 수 있으리라… 프레이저는 적은 가능성이라도 남기려 애썼다.
바깥은 여전히 경보와 폭발음이 잔존하는 흉흉한 밤이었다. 하지만 통제실 안에서 혼자 애쓰는 프레이저의 숨소리는, 그 어떤 마리안의 비명보다도 서글프게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