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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19장: X국 고문단, 배스토니의 문을 두드리다

by 진동길



노바 앤젤레스 하층 구역, 밤 11시 43분.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산성비가 부슬부슬 내려오는 가운데, X국(X-Nation) 측에서 파견된 ‘사도단 고문단’ 3인이 지하 은신처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전투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 출신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외교 감각을 갖춘 베테랑들이었다. 그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인물, 랭던(Langdon) 중령은 이번 임무가 얼마나 무모한지 알면서도, 조용히 이를 악물고 폐건물 안을 살폈다.


“여기가 사도단과 접촉한 자들의 본거지라더니… 생각보다 허술하군.”

랭던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기다리고 있던 제이드와 피터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마주 봤다. 사실 은신처라기보다는, 폭격에 파손된 공장 창고를 억지로 개조해 둔 ‘셸터’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환영한다고 하긴… 죄송한 처지네요.”
제이드는 흰머리칼이 땀에 달라붙은 채, 부끄럽게 고개를 숙였다.
“아시다시피 우린 자원도 장비도 모자라요. 다만, 여길 통해 배스토니 교정시설 쪽으로 갈 길은 만들어 뒀습니다.”



배스토니 교정시설— X국이 의심 반·기대 반으로 주시하는 곳. 소장 프레이저(Frasier)가 ‘12 사도단’을 육성 중이라는데,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다. X국 입장에서는 “레플리칸트 부대가 정말 실전에 쓸 만한가”를 직접 검증하고 싶었다. 검증 결과에 따라, X국 상층부가 노바 앤젤레스 사도단에 군사 지원을 할지 말지가 결정될 터였다.


랭던은 곁에 있던 고문단 요원들에게 눈짓했다. 이들은 곧 콤팩트한 위성통신기를 설치해, X국 측에 ‘이동 시작’을 암호화해 보고했다.


“좋아. 교정시설까지 안내해 주시죠. 정식 면담을 청하거나, 아니면 몰래 잠입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그게…”
피터가 한숨을 쉬었다.
“배스토니는 철저히 ‘독립 구역’처럼 여겨져서, 정부군도 함부로 들락거리지 못해요. 정식으로 가려면 상층부 독재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럼 프레이저 소장과 협력하기 전에 들통나고 맙니다.”


결국, ‘은밀히 잠입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럼 우릴 밀입국자 취급이라도 한다는 겁니까?”

랭던의 목소리가 거칠어졌으나, 제이드는 담담히 답했다.


“배스토니 내부엔 드론 감시와 감옥 특유의 생체인식 센서가 깔려 있어요. 그걸 피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교도관 중 일부와 협조해야 해요. 다행히, 소장 프레이저가 우리가 들어오는 걸 막진 않을 거예요.”


제이드와 피터가 마지막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작게 끄덕였다. 무척 위험한 도박이지만, 이제 달리 길이 없었다.


배스토니 교정시설 주변 — 반역자와 함정

그 시각, 교정시설 외곽 담장 인근.
산성비가 시커멓게 고인 웅덩이 옆, 부서진 수로 입구에서 교도관 라이먼(Lyman)이 서성이고 있었다. 검은 우의를 쓴 채, 주변을 재빠르게 둘러보는 그의 표정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혼잣말을 뱉어냈다.


“뭐 하는 짓이지… 걸리면 곧장 반역죄로 처형당할 텐데.”


그가 이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미리암(Miriam)이 건넨 은밀한 지시 때문이었다. “곧 외부 협력자들이 교정시설로 들어올 것이다. 당신이 통로를 열어 줘야 한다.”
라이먼은 미리암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고, 동시에 잔혹한 처벌에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 여기야… 하수구 연결구.”

혼잣말을 연신 중얼거리던 그는 수로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 도관 밸브를 조정했다. 이 작업만으로도 내부 감시 센서 일부가 잠시 중단된다. 교정시설 내부 전력을 교묘히 우회시켜, 5분 남짓한 블랙아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라이먼이 알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정부군의 첩자가 이미 그를 미행 중이라는 점이었다.

• 철골 기둥 뒤, 물에 잠긴 그림자 속에 드론 한 기와 정체불명의 인물이 숨어 있었다.

• 그 인물은 교도관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실제론 사이먼 벨 측 정보요원이자 “감찰 장교”였다.

“라이먼이 움직이기 시작했군. 곧 외부 놈들이 들어오겠지.”


감찰 장교는 드론에게 손짓해 녹화 모드를 켰다.
‘좋아. 일단 놈들이 미끼를 물도록 두자. 뒷길로 유인해, 일망타진하겠다.’



X국 고문단 + 제이드 일행, 교도소 비밀 통로 진입

밤이 더 깊어지자, 폭우처럼 쏟아지는 산성비 속에서 랭던이 이끄는 X국 고문단, 그리고 제이드·피터가 사다리를 타고 지하 하수로로 내려섰다. 손전등조차 마음대로 켜기 어려운 칠흑의 통로 안,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 길… 진짜 맞아?”
랭던이 의심 어린 시선으로 제이드를 쏘아보자, 피터가 대신 중얼거렸다.
“곧 시설 내부 파이프랑 연결되는 지점이 나올 거예요. 아마 5분 정도 감시 센서를 교란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라고 제이드는 속으로 곱씹었다. 교도관 라이먼이 제때 밸브를 열어 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단숨에 감시 드론에 포착될 것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경보가 울리고 무장 병력이 몰려들겠지. 그러면 X국 측 고문단은 입구에서 전멸할지도 몰랐다.


긴장 속에서 수로 계단을 기어오르다, 드디어 무거운 철제 문이 나타났다. 호신용 총기를 쥔 랭던이 시그널을 줬고, 제이드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갑니다.”

끼익—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문을 조금 열었을 때, 놀랍게도 문 너머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라이먼이 라이트를 들어 흔들고 있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오래 못 버텨요.”
라이먼은 날카롭게 숨을 몰아쉬며 손짓했다.


이어서 랭던과 피터, 다른 고문단원들이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불빛에 익숙해지자, 눈앞엔 배스토니 교정시설 지하 한 구역— 어두운 보수 통로가 펼쳐져 있었다. 천장 곳곳에 파이프가 얽혀 있고, 습기 가득한 콘크리트 벽이 기묘한 메아리를 냈다.


“좋아, 일단 성공이군.”
피터가 안도하자, 라이먼은 당황한 표정으로 “조용히!”라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때—

쾅!
폭발에 가까운 굉음이 울렸다. 바닥이 덜컹거리고,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퍼졌다.


“어… 어째서 갑자기—”
라이먼은 얼굴이 새하얘졌다. “우릴 함정에 빠뜨리려는 누군가가 있다”며 파악하기도 전에, 그건 이미 현실이 되었다.



감찰 장교의 습격

갓 철문을 통과한 일행 앞쪽 복도에서, 교도관 복장의 무장 인원이 드론과 함께 걸어 나왔다. 그중 한 명이 총기를 높이 들어 외쳤다.

“전원 움직이지 마! 불법 침입 혐의로 체포한다!”


상황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랭던은 망설임 없이 대응 사격을 준비했고, 제이드는 “이러다간 전부 발각된다!”라며 긴장했다.


‘5분간 센서가 꺼진다’는 말은 무효가 된 모양이었다. 누군가 이미 라이먼의 교란 계획을 파악하고, 반대로 이들을 유인해 온 것이다.


“안 돼!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도…”
라이먼이 총을 버리고 항복 제스처를 보이려던 순간, 상대 쪽 드론에서 레이저 사격이 터졌다. 에메랄드빛 섬광이 벽을 긁고 지나가, 시멘트 파편이 눈처럼 튀어 올랐다.


“젠장!”
피터가 재빨리 벽 뒤로 몸을 숨겼고, 랭던의 부하들도 교전 태세에 들어갔다. 비좁은 지하 복도에서 교전이 벌어지면, 어느 쪽이든 쉽게 피할 길이 없었다.



드러나는 진실

찰나의 혼란 와중에, 제이드의 눈이 교도관들 뒤에 서 있던 인물을 포착했다.
감찰 장교— 그는 부하들이 교정시설 소속이라 믿고 있었지만, 실제론 사이먼 벨의 직속 정보요원이었다.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금속 장식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줬다.


“프레이저 소장 몰래, 여기서 무력 진압을 시도하는 건가…”

제이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즉, 정부군 측(사이먼 벨 쪽)은 이미 프레이저가 외부와 내통하는 정황을 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잠입 팀을 완전히 박살 내어, 프레이저의 배신 행위를 입증하려는 노림수이기도 했다.


“선택지 없다. 쏴!”
랭던이 짧게 외쳤다.

타타탕—
짧은 총성이 묵직하게 울렸고, 드론이 날렵하게 움직여 광선을 쏘아댔다. 통로 벽이 깨지며 파편과 스파크가 춤추듯 퍼졌다.
교정시설 내부로 침투한 X국 고문단은, 이대로 갇힌 쥐가 될 위기였다.



오리온의 등장

바로 그때, 복도 저편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짙은 전투복을 입고 얼굴을 반쯤 가린, 강력한 체구의 인물—오리온(Orion). 감찰 장교와 조우한 격인지, 곧바로 격렬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누구냐, 네 정체가!”
감찰 장교가 비명을 지르며 레이저 검을 휘두르지만, 오리온은 민첩하게 몸을 틀어 피했다. 그리고는 강력한 팔힘으로 상대를 벽에 내리쳤다. 쾅!— 벽이 흔들리고, 콘크리트 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네가 교정시설을 엉망으로 만들 셈이냐…”
오리온이 낮게 으르렁거리자, 감찰 장교가 숨을 몰아쉬며 반격했다. “사이먼 벨 각하의 명을 받아 널 체포하겠다!” 하고 외쳤지만,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혔다. 감찰 장교와 그의 드론, 그리고 따라온 무장 인원 일부가 오리온에게 맥없이 제압되었다. 그 사이, 랭던과 피터, 제이드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다.

“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랭던이 자세를 풀며, 눈앞의 신비로운 레플리칸트 전사를 쳐다봤다. 오리온이 헬멧 보호대를 살짝 들어 올리자, 그 고유의 호박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난 오리온. 소장 프레이저의 직속 부대원이다. … 너희가 외부 손님이군.”


그 말에, 라이먼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우린… 소장님과 접촉하려고…”


오리온은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는 듯, 감찰 장교를 제압해 둔 채 뒤를 돌아봤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더 큰 무리가 오기 전에. 소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역시 프레이저 소장이 우리 침투를 알고 있는 거였어…!’
제이드와 피터, 그리고 랭던 일행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확인했다. 동시에, 묘하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 함정은 정부군(혹은 사이먼 벨 쪽)이 깔아 둔 것이었고, 프레이저 부대 중 일부가 구원하러 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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