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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줍는 아이

12장. 길을 밝히는 나침반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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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이 감도는 그 길 위에서,
아이의 품에는 부드럽게 물든 기억의 천이 소중히 안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무게감이 어린 길이었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여행이 아니라,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은 유난히 흐렸고,
몽환적인 안개가 낯선 방향으로 자욱이 드리워졌다.
바람은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았고,
별빛마저 희미하게 흔들려
아이의 발걸음은 생전 처음으로 멈춰 섰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로 바뀐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발아래 가만히 놓인 낡은 나침반이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닳고 바랜 금속 표면 한가운데,
아주 작게 새겨진 별 문양이 깊은 울림을 주는 듯했다.


손을 뻗으려는 찰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나침반은 단순한 방향이 아니라,
네 별이 부르는 길을 가리키는 도구란다.”


말한 이의 눈동자는 오래도록 밤하늘을 살펴본 사람처럼
깊고 고요했다.
바람처럼 말이 적지만,
그 묵직한 시선 안에는 어딘가 따뜻한 신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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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물음


“이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나요?”
아이의 떨림이 묻어나는 물음에, 장인은 조심스레 나침반을 쥐여주었다.


놀랍게도 바늘은 북쪽도, 남쪽도 아닌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새로이 열리는 방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네가 가야 할 별의 길이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뿐인 길.
너의 상처와 노래, 기억과 용서,
그 모든 것을 통해 만들어진 길이기도 하지.”


아이의 시선이 깊어졌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처럼,
가슴속 한구석에선 오래 묵은 의문이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별에서 떨어져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결국 무엇을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걸까요?”


장인은 작게 미소 지으며,
아이의 주머니 속에서 미세하게 부딪히는 별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별은 스스로 빛나기 위해서만 존재하진 않는 단다.
저마다 어둠에 잠긴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주는 빛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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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별이 비추는 타인의 길


그 말에, 아이의 가슴은 소리 없이 흔들렸다.
지금껏 조심스레 모으고 간직해 온 별 조각들이
서로를 향해 이전보다도 강렬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소리를 어렴풋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는 ‘받는’ 여정을 넘어,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여정을 시작해야 해.”


장인은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속삭였다.


“이제부터 너는
‘별을 줍는 아이’가 아니라
‘빛을 나누는 아이’가 되어야 해.
네가 쌓아온 기억과 고백, 눈물과 기도,
그 모든 순간이
어느 누군가의 어둠 속을 밝혀줄 빛이 될 수 있단다.


아이의 눈가에는 작은 눈물이 고였다.
그것은 감동과 깨달음, 그리고 책임감이 한데 어우러진 물방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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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다시 시작된다


나침반을 품에 안은 아이는
흐릿한 안갯속에서도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어쩌면 길은 아직도 혼란스러울 테지만,
그 길은 이미 “나를 위한 길”이 아닌,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길”,
“받은 빛을 나누기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주머니 속 별 조각들은
맑은 음을 울리며 하나의 문장을 속삭이는 듯했다.


“별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먼저 ‘비추는 법’을 배워야 해.”


아이의 가슴에 그 문장이 깊이 새겨졌다.
그리고 ‘별을 줍는 아이’는 최초로
자신을 너머,
아직 만나지 않은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늘은 여전히 회색 어둠을 품고 있었지만,
그 어둠 또한 나누어 줄 빛을 간절히 기다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밤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별은
자신이 쌓은 빛을 타인에게 건네줌으로써
더 밝게 더 크게 반짝이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아이 또한 이젠 이해하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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