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조개피리에 깃든 별빛
다음날 해가 기울 무렵, 은별이와 도윤이는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어제 잠들기 전, 은별이는 ‘엄마의 자장가’를 조금씩 되찾고 싶다며 조개피리를 찾아보겠다고 다짐했었다.
도윤이는 은별이의 마음을 눈치채고,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은별아, 오늘은 뭘 찾아야 할까?”
모래를 만지작거리던 도윤이가 물었다.
은별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조개피리. 잃어버린 노래를 불어줄 수 있는 그 피리를… 정말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닷물은 밀려왔다가 다시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마치 조용한 노랫말처럼 은별이의 발목 아래를 스쳐갔다.
두 사람은 모래사장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조개껍데기를 하나씩 주워 보았다.
처음엔 그저 무심코 집어 들었지만, 가만히 귀를 대보면
바람이 언뜻 뱃머리에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리는 조개도 있었다.
“이건 어떨까?”
도윤이가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조개껍데기를 보여주자,
은별이는 그 조개를 살펴보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너무 작아서 구멍 뚫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
두 사람은 그렇게 여럿을 골랐지만, 쉽게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해가 저물어가자 도윤이는 미안한 표정으로 은별이를 바라봤다.
“내가 괜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 건 아닐까?”
“아니야.”
은별이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오늘 꼭 찾아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다만… 바다를 걸으며 바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왠지 조금씩 노래의 조각이 떠오르는 기분이야.”
도윤이는 그 말에 안도한 듯 작게 웃었다.
“그럼 조금만 더 돌아보고 갈까?”
“응, 좋아.”
두 사람은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달이 뜨기 시작하자, 바다 위에는 은빛 길이 생겨났다.
희미한 달빛이 모래사장에 내려앉아, 모래알 반짝이는 소리를 잔잔히 감싸는 듯했다.
어느 순간, 은별이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몸을 숙였다.
잔잔히 밀려드는 물가 바로 옆,
유독 색깔이 진한 조개껍데기 한 쌍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쪽은 작은 균열이 있었고, 다른 한쪽은 더 깊이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도윤아, 이건 어떨까?”
조심스럽게 조개를 꺼낸 은별이는 조개 안쪽을 살펴봤다.
안은 비교적 깨끗했고, 한 편에는 물결 모양의 은은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파도 너머 달빛이 조개 속에서 함께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와, 이건 뭔가 특별해 보이는데?”
도윤이가 감탄하며 말했다.
“구멍만 잘 뚫으면 멜로디가 나올 수도 있겠어.”
두 사람은 조개를 소중히 품에 안고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조개껍데기를 잘 씻어내니, 더 선명한 은빛 무늬가 빛났다.
조개 가장자리에 작은 홈을 만들어 입김을 불어보자,
아직은 소리가 불규칙하게 새어 나왔지만,
언젠가 여기에 엄마의 노래가 깃들 것만 같은 기대가 일었다.
그날 밤, 은별이는 흔들의자 곁에 앉아 조개피리를 매만졌다.
윤 노인은 달빛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거예요?”
은별이가 살며시 물었다.
윤 노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바닷가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전설 하나를 해줄까 한다.
‘밤하늘의 별빛을 조개피리에 담은 아이’에 관한 전설이란다.”
그리고 윤 노인은 마치 먼 기억을 더듬듯, 낮게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갔다.
아주 오래전에, 이 마을에 자인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어.
그 아이는 목소리가 맑아 마을 축제 때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어느 해엔가 큰 폭풍이 불어닥쳐 마을이 심하게 파손되었단다.
폭풍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상심한 채 서로에게 말을 건네기조차 어려워했지.
자인이는 그런 마을 사람들을 위해 작은 조개피리를 만들었어.
바닷가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껍데기를 구해,
그 안에 별 모양 구멍을 뚫고, 밤마다 바람의 소리를 적셨단다.
처음엔 그냥 휘파람처럼 들렸지만,
몇 번이고 연습하며 마음을 담아 불다 보니,
어느 날 저녁엔 마치 별빛이 울리는 것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조개피리에서 흘러나왔어.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하나둘씩 밖으로 나왔단다.
기적처럼, 피리 소리가 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준 거야.
그날 밤, 자인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피리를 불자,
반짝이는 별들이 마을 위로 내려온 듯 포근한 빛이 퍼졌다고 해.
“사람들은 조개피리를 통해 별빛이 내려왔다고 믿었지.
사실은, 자인이의 진심이 바람을 타고 사람들 마음속으로 번져갔던 거겠지만 말이야.”
윤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은별이는
방금 주워온 조개껍데기를 다시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은빛 무늬가 더 선명하게 빛나는 듯 느껴졌다.
“할아버지… 저도 언젠가, 이 피리에 노래를 담아서 불 수 있을까요?”
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네 마음속 노래가 깨어나면,
그 소리는 바람보다도 먼저 세상을 돌며 누군가를 위로해 줄 거야.”
은별이는 피리를 꼭 쥐고 눈을 감았다.
엄마의 자장가를 조금씩 떠올려 보았다.
메아리치듯 아련한 멜로디가 귓가에 맴돌았고,
어느 틈엔가 아주 약한 바람 소리까지 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달빛은 더욱 밝아 바다 위에 길게 비쳤다.
은별이는 아직 미완성인 피리를 입에 대고,
조용히 숨을 불어넣었다.
자장가의 한 소절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흐—”
아직은 불완전한 숨소리와 함께, 조개껍데기 안에서 낮은 바람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도 은별이에게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노래가 되살아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윤 노인은 흔들의자에 몸을 맡기고,
달빛을 따라 반짝이는 파도의 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어떤 멜로디가,
서서히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을 기다리는 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그 밤도 조용히 깊어갔다.
바람은 여전히 밤하늘을 감돌며,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위한 노래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은별이의 품 안에는,
반짝이는 별빛을 품은 조개피리가 조금씩 숨을 골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