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함께 계시나이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나이다
성모송의 고요한 울림 가운데 한 구절이 특별한 빛을 발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함께 계시나이다”라는 짧고도 깊은 이 구절은, 마리아의 존재가 얼마나 큰 은총으로 가득 차 있는지 밝히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이 단순한 고백은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하느님의 현존과 임마누엘(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성모송 전반부에서 등장하는 이 귀한 구절의 라틴어 원문은 “Dominus tecum (도미누스 테쿰)”으로, 직역하면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라는 의미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총을 입은 이여!”라며 처음 말을 건넨 뒤, 그 이유를 설명하듯이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곧 마리아를 은총으로 충만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은총으로 가득한”이라는 표현 자체가 하느님 현존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퀴리오스(Κύριος)”는 원래 "주인"이나 "지배자"를 뜻하지만,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 "야훼"를 대신해 존경과 경외를 담아 사용했던 경칭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주님"은 하느님을 의미할 뿐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기 전이었지만, 이미 마리아 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마리아는 곧 "하느님의 임재의 성전"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셨던 것처럼(탈출 25,8 참조), 이제 마리아는 ‘새 계약의 궤’로서 하느님의 임재를 자신의 품에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느님(또는 그분의 천사)이 함께 있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때로는 단순한 인사말로 쓰이기도 했지만(예: 판관 6,12), 특히 하느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실 때 자주 이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참조: 탈출 3,11-12; 여호 1,5 등).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이 말을 건넨 것도 메시아의 어머니라는 중대한 사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친히 그녀와 함께하시겠다는 확실한 보증이었습니다. 실제로 천사는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라며 안심시키고 하느님의 능력이 어떻게 그녀와 함께할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습니다(루카 1,30-37).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마리아는 두려움 없이 믿음과 순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이 구절은 마리아와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의 깊고 신비로운 관계를 드러냅니다. 전능하신 성부 하느님은 마리아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은총으로 가득 채우셨으며, 성자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 사람이 되어 오시어 그녀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성령 하느님은 마리아 위에 머무르며 그녀를 하느님의 거룩한 처소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은 마리아를 “성부의 딸, 성자의 어머니, 성령의 신부”로 부르며, 이 짧은 한마디 속에 담긴 삼위일체의 깊은 신비를 기꺼이 노래합니다.
성모송을 드리는 우리 역시 “주님께서 함께 계시나이다”라고 고백하며 마리아와 함께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에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미사 때 사제가 신자들에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할 때, 우리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고 응답하는 것과 연결되는 아름다운 신앙의 표현입니다. 성모송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깊은 위로와 희망을 되새기며, 마리아의 삶과 믿음 안에서 우리 곁에 오시는 주님을 따뜻하게 맞이하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함께 계시나이다"라는 구절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하느님의 영원한 현존과 사랑을 우리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가도록 격려하는 신앙의 아름다운 초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