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 마리아께 나시고”
사도신경의 각 구절에는 교회가 전해온 풍성한 신앙의 유산과 깊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백을 다루고자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님의 신비를 함께 묵상하며, 그 안에 담긴 교회의 가르침과 우리 신앙생활에 주는 의미를 깊이 탐구해 보겠습니다.
1. 동정녀 마리아의 신비
• “성령으로 잉태되어”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히 자연적 현상을 넘어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와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35 참조).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라고 묻자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으실 것”이라 대답했습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하느님의 임재가 구름으로 덮이는 것으로 묘사된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출애굽기 40,34). 즉,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셨으나, 그 존재의 본질은 성부 하느님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인간적 노력이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전적인 사랑과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신앙에 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마리아가 “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믿음과 순종의 응답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협력함으로써 이 신비는 이루어졌습니다.
• “동정 마리아께 나시고”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때부터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요한 1,14 참조) 우리와 똑같은 삶의 현실을 사셨습니다. 동정녀가 아기를 낳는 일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는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와 마리아의 육체적 현실이 하나로 결합된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모든 연약함과 감정을 체험하셨으나, 죄는 없으시기에(히브리서 4,15 참조)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구원할 능력을 갖추신 분이 됩니다.
2. 교회의 전통과 공경
•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공경(hyperdulia)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라는 믿음으로 인해, 그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특별한 위치로 공경합니다. 마리아는 신적 경배(라트리아, latria)의 대상이 아니라 특별한 공경(hyperdulia)의 대상입니다. 이는 마리아 자신이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모셔온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고유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로 공식 선포함으로써,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 예수님의 강생(Incarnation)의 핵심
비록 이 구절이 마리아를 강조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강생(Incarnation)’ 신비를 드러냅니다.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위대하고 독특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은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약함을 직접 체험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아픔을 나누셨습니다.
우리가 이 고백을 할 때마다 “하느님이 내 삶의 구체적인 현실에까지 들어오셨다”는 놀라운 위로와 “나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느끼게 됩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상처와 고통 가득한 삶의 현실 가운데 직접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신앙으로 응답한 것처럼, 우리 역시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신앙의 응답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사실은 육체와 물질 세계가 경멸받을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을 담을 수 있는 소중한 통로임을 가르쳐 줍니다.
사도신경의 이 고백은 마리아의 특별한 역할과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신비를 함께 드러내며,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사랑으로 충만한지를 선포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 곁에 함께 계신다는 진리를 더욱 생생히 깨닫고, 일상 속에서 하느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