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을 풀고,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문은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었다”

by 진동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초대 교회의 두 기둥,

베드로와 바오로,

두 순교자를 함께 기억하며 그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를 바라봅니다.


한 분은 열쇠를 받은 사도,

다른 한 분은 복음을 위해 칼을 들었던 사도.

한 분은 갈릴래아의 어부였고,

다른 한 분은 율법에 능통한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서

한 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는 일치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자신을 비우고, 교회를 위해 흘리는 피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들이었습니다.




“문은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었다”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넌 안 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그녀는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들른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듣습니다.

“너는 누구든지, 어떤 자리에서든 반석이 될 수 있다.”

그날, 그녀는 말없이 울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자동문 앞에 섰을 때

문이 스르륵 열렸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문은 저절로 열린 게 아니라, 내가 그 앞에 섰기 때문이야.”


그날 이후, 그녀는 다시 꿈을 좇기 시작했고

결국 심리상담사가 되어

이제는 다른 이들의 닫힌 문 앞에 함께 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우리 앞의 문은 결코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며,

주님께서 먼저 길을 내셨고,

우리가 그 길을 따라 나설 때 열리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쇠문을 여시는 분,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1. “베드로는 쇠사슬에 묶였으나, 교회는 기도했다.”


오늘 사도행전은 밤의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감옥, 쇠사슬, 파수병, 그리고 공포.

헤로데는 정치적 유익을 위해 사도들을 죽입니다.

야고보는 이미 칼에 쓰러졌고,

이제 베드로가 그 다음 차례입니다.


그러나 어둠의 가장 깊은 곳에

빛이 비춥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깨우며 말합니다.

“빨리 일어나라.”


그 순간, 쇠사슬이 떨어지고

쇠문이 스스로 열립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해방은

교회가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두 세력이 마주합니다.

폭력의 권력과 기도의 권능.

어느 것이 더 클까요?

하느님의 응답은 명확합니다.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2. “쇠사슬을 풀어내는 은총” — 심리학과 신학 사이


현대 심리학은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을 씁니다.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더 나아가 **“해방의 은총”**을 말합니다. 쇠사슬은 단지 철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자기비하, 죄책, 실패의 기억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상처를 안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다시 불러 일으켜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주님은 우리 삶의 실패를 교회의 기초로 바꾸십니다.

쇠사슬을 은총으로 녹이십니다.




3.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기다린다” – 바오로의 고백


바오로 사도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훌륭히 싸웠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고난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내면의 평화, 그리스도와의 깊은 일치에서 비롯된 고백입니다.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고, 앞으로도 구원될 것이다.”


바오로는 모든 것을 잃고도 잃지 않은 한 분, 곁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분께 붙들린 이는

비로소 세상의 무엇으로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순례자가 됩니다.




4. “너는 베드로이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예수님께서는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란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 고백은 오늘도 살아 있고, 우리를 향해 계속 묻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쇠사슬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쇠사슬은 무엇입니까?

불안입니까? 과거입니까?

죄책감입니까, 아니면 외면당한 상처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신을 신어라. 나를 따라라.”

그리고 교회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누군가의 쇠사슬이 풀리도록.


오늘, 주님은 철문을 열고

우리의 사슬을 부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다른 이들의 쇠사슬을 풀어주는 작은 천사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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