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피어난 이름 하나
존재의 기원에 새겨진 사명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 요한 탄생 대축일’을 지내며,
하느님께서 한 사람의 존재 안에 얼마나 깊은 뜻을 새기시는지를 묵상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
이 구절은 단지 요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존재론적 진실을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알기 전에 이미 부르고 계셨고,
이름을 부르심으로 존재를 일으키십니다.
“소년과 나무 이름표”
한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학교 뒤뜰에, 아이들이 손수 심은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나무에 ‘희망’, ‘기쁨’, ‘빛’ 등 이름표를 달았지요.
그러나 한 소년은 끝내 아무 이름도 붙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소년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괜찮단다. 지금 네가 모르겠다고 해도, 넌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야.
진짜 이름은, 조용한 기다림 속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란다.”
소년은 그 말을 기억하며 나무를 돌봤고,
며칠 후 나무가 꽃을 피웠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나무의 이름은 요한이어야겠구나.
침묵 속에서 자라고, 언젠가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야.”
그날 이후, 소년은 조심스럽게 이름표에 새겼습니다.
“요한 – 하느님의 은총”
2. 광야에서 준비되는 목소리 – 침묵 속의 형성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이 말이 선포되자 즈카르야의 혀가 풀리고, 그는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동안 그가 겪은 침묵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신뢰를 배우는 시간,
말보다 더 깊은 언어를 익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자라났습니다.
광야는 메마른 장소지만,
하느님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랍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예수님도 광야를 통과하셨고,
요한 역시 그 침묵의 땅에서 자기 목소리를 얻었습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느끼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물을 때 회복된다.”
요한의 광야는 고독의 길이 아니라, 정체성과 사명을 깨닫는 길이었습니다.
3. “나는 그분이 아니다.” –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겸손의 증언
사도행전은 요한의 고백을 이렇게 전합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
‘다른 분을 위한 자리를 비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짜 위대한 사람은 자리를 차지하는 이가 아니라,
그 자리를 정결하게 비워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세상 안에서 요한처럼,
누군가를 위한 통로, 누군가를 향한 징검다리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하느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너는 누구를 준비하며 살고 있느냐?”
“너는 너만의 광야를 지나며 무엇을 배우고 있느냐?”
요한은 한 사람의 이름이었지만,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부르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 이름 안에 담긴 은총, 그 침묵 속에서 다듬어진 목소리,
그 겸손 안에 숨겨진 진리를 우리도 살아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을 준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