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분을 안은 아이
어느 날, 임금님의 방이 온 나라에 붙었습니다.
“나라 안 모든 아이들은 입궐하라. 임금이 특별한 꽃씨를 내리노니, 이 씨앗을 정성껏 가꾼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
아이들은 사방에서 궁궐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속에는 조용한 눈빛을 가진 소년, 핑도 있었습니다. 핑은 임금님에게서 꽃씨를 받아 돌아와, 그 어느 때보다 정성껏 화분에 심었습니다. 매일 아침 물을 주고, 흙을 고르고, 햇빛의 방향도 바꾸어주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화분은 끝내 침묵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싹은 트지 않았습니다. 핑은 조심스레 다른 화분으로 옮겨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봄.
아이들은 저마다 만개한 꽃을 품에 안고 고운 옷을 차려입은 채 궁궐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핑은 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화분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구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정성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네가 쏟은 마음을 그대로 임금님께 드려라.”
그 말에 용기를 얻은 핑은 조심스럽게 빈 화분을 들고 궁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임금님 앞에 선 마지막 아이가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왜 빈 화분을 들고 왔느냐?”
핑은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씨앗을 받은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얼마나 애썼는지, 꽃이 피지 않아 얼마나 속상했는지, 그러나 결코 거짓으로 채우지 않았다는 것을.
임금님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찾던 아이가 바로 여기 있도다!
너희는 어디서 꽃을 피운 것이냐?
내가 준 씨앗은 모두 익혀져 있어, 싹이 틀 수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꽃이 피었다니… 너희가 심은 건 진실이 아닌 다른 무언가였구나.”
순간, 궁궐 앞뜰은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핑의 빈 화분 앞에서, 임금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진실은 꽃처럼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진실을 지키는 용기는 왕의 자격보다 더 귀한 것이니라.”
빈 화분의 영성
우리는 누구도 ‘빈 화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허함, 실패, 무능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의 꽃, 욕망의 꽃을 피우려 합니다.
진실보다 체면을, 성실보다 성과를 우선하게 됩니다.
그러나 용기 있는 영혼은 자신의 빈 화분을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처음부터 채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사실 ‘비어 있는 화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정성으로 품어낼 때, 그것은 신뢰와 진실의 그릇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도 기도합시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손에 들려 있을 그 화분이
비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않기를.
그 빈자리를 정성으로 안아낸
참된 자의 마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