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맞이하는 장면과,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복음의 장면을 함께 묵상합니다. 이 두 장면은 짧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신앙의 본질과 삶의 긴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혹시 사랑이라는 포장지 속에 인정받고 싶고 박수받고 싶고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불평과 불만, 과도한 책임감만 가득한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고, 만일 그런 게 있다면 모든 것을 진정 사랑하는 이 앞에 내려놓고 ‘머무름’과 ‘환대’와 ‘사랑’의 신비 안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두 가지 장면, 두 가지 길: 먼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있던 아브라함은 낯선 나그네 셋을 보고 천막 밖으로 달려 나가 정성껏 환대합니다. 마르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여 누구보다 분주히 시중을 듭니다. 둘 다 성경이 가르쳐 온 가장 인간적인 덕목, “환대(hospitality)”의 모범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마음 안에서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머무름과 환대’의 영적 역학: 아브라함은 “주님, 저를 그냥 지나치지 마소서”라며 간청하고, 마르타는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십니까?”라며 불평합니다. 둘 다 ‘머무름’을 원했습니다. ‘머무름’은 구약에서 하느님의 현존(쉐키나)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환대의 ‘태도와 마음씀, 말투와 기도의 자세’가 결과를 완전히 달라지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머무신 주님은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으리라’는 상상도 못 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반면 마르타는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는 따끔한 지적을 받습니다. 왜입니까? 마르타는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과잉책임감과 분주함의 덫에 갇혀버렸기 때문입니다.
3️⃣ 분주함과 과잉책임감의 심리학: 마르타의 마음을 이해해 봅시다. 그녀의 이름은 ‘여주인’을 뜻합니다. 손님 접대, 집안일, 시중드는 것 — 모든 것이 그녀의 몫입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마르타는 ‘과잉책임감’에 갇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가 해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결국 불평으로 터져 나옵니다. 마리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기만 합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무책임하고 게으른 여자로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타를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녀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그녀의 헌신을 깊이 아시고 사랑하시되, 그 사랑이 ‘분주함에 묻히지 않도록’ 부드럽게 깨우치십니다.
4️⃣ 봉사와 관상의 균형: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 말씀을 ‘행동하는 삶(Active Life)’과 ‘관상하는 삶(Contemplative Life)’의 긴장으로 보았습니다. 마르타는 교회 안에서의 실천적 봉사를 상징합니다. 마리아는 기도와 말씀 안에 머무는 관상의 자세를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풀이합니다.
> “마르타는 교회가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이고,
> 마리아는 장차 천상에서 누릴 영원한 삶이다.”
결국 우리는 마르타처럼 수고해야 하지만,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머무르는 삶’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말이지요.
5️⃣ 단순성의 법칙(신앙의 물리학):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을 떠올려 봅시다. 불필요한 복잡함을 잘라내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우리 인생은 늘 복잡해집니다. 할 일은 늘어나고, 책임은 무겁습니다. 그러나 잃지 말아야 할 하나는 주님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그렇게 분주하게 만듭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걱정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며,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게 만듭니까?
주님은 오늘도 부르십니다. “너의 걱정을 잠시 내려놓아라. 내 발치에 앉아 나와 함께 머물러라. 너의 모든 수고는 내가 기억하겠다. 그러나 너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나다.”
주님, 우리의 마음이 자꾸만 분주할 때, 당신 발치에 머무르는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임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오늘도 좋은 몫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