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특이점 - (AI 윤리 위원회) 2

2. 책임 소재와 자율성의 딜레마

by 진동길


2. 책임 소재와 자율성의 딜레마


AI 기술이 인간의 결정을 보조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자율 시스템으로 진화함에 따라, 가장 민감하고 복잡한 윤리적 문제 중 하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입니다.

이는 단순한 법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기계의 자율성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성이라는 깊은 철학적, 사회적 질문을 포함합니다.




예시 1: 자율주행차 사고


상황 설명


한 자율주행차가 고속도로를 주행 중 예기치 못한 상황(예: 보행자의 급작스러운 진입, 도로 표지 오류 등)에서 사고를 일으켜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차량은 ‘자율주행 모드’ 상태였으며, 운전자는 핸들을 잡지 않고 있었습니다.


딜레마: 누구의 책임인가?


가능성 설명

AI 개발 회사 차량의 판단을 구현한 알고리즘과 센서를 설계했으므로, 그 시스템의 오류는 회사의 책임인가?

차량 소유자(운전자) 자율주행 모드라도 차량 내에 있었던 만큼 감독 의무가 있었는가? 하지만 실제 제어권이 없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알고리즘 설계자 예컨대 AI가 ‘보행자를 피하기보다는 차량을 보호하는 쪽으로’ 프로그래밍되었다면, 그 가치 판단의 윤리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예측 불가능한 외부 요인 도로의 돌발 변수(갑작스런 폭우, 신호 오류, 인공지능이 학습하지 못한 패턴 등)는 누구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윤리적 쟁점

• 책임의 다중 분산: 문제의 원인이 여러 요소(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운전자, 외부 환경)에 걸쳐 있어, 책임의 단일화가 어렵습니다.

• 의도 vs 결과의 분리: 인간이 아닌 AI가 내린 결정은 ‘고의’나 ‘과실’ 개념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기계는 책임을 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환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합니다.

• “인간처럼 사고하는 AI” vs “인간 대신 판단하는 AI”: 도구로서의 AI를 넘어서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로 간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도 존재합니다.


법적 논의

• 현재 대부분의 법 체계는 **제조물 책임법(product liability)**이나 **불법행위 책임(tort)**을 통해 AI 사고의 책임을 기업 또는 사용자에게 귀속시키고 있습니다.

• 그러나 AI가 실제로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수록, 기존 법 체계는 책임 주체의 공백에 직면하게 됩니다.

• 유럽연합은 이에 대응해 “AI 시스템에 대해 새로운 법적 인격(legal personhood)을 부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공론화한 바 있습니다.




예시 2: AI 기반 의료 진단 시스템


상황 설명


한 병원이 도입한 AI 진단 시스템이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위암이 아닌 소화불량으로 오진했고, 이로 인해 환자는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딜레마: 누구의 책임인가?


가능성 설명

AI 시스템 자체 알고리즘이 진단 판단을 내렸다면, 그 오류의 책임은 기계인가? 그러나 AI는 법적으로 책임 주체가 아님.

의사(의료진) AI의 진단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승인한 의사가 있었기에, 전문가로서의 최종 판단 책임이 있는가? 반대로, 의사가 AI를 신뢰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라면, 그 신뢰도마저 시스템 책임으로 봐야 하는가?

개발 회사 잘못된 데이터셋으로 훈련된 AI라면, 개발 단계의 부주의 혹은 테스트 부족이 원인이 될 수 있음.

병원 또는 시스템 관리자 AI를 도입한 기관은 그 기술의 한계를 충분히 인지하고 고지했는가? 인간-기계 상호작용의 경계를 명확히 했는가?


윤리적 쟁점

• 책임의 위임과 회피: 의료진이 AI를 보조 도구로 사용할 경우 책임이 명확하지만, AI의 판단력이 향상되고 ‘사실상’ 의료진의 결정을 대체하는 상황에서는 책임의 무게 중심이 흐려집니다.

• 신뢰와 오류: AI는 “정확성 향상”을 이유로 의료 현장에 도입되었지만, 오류에 대한 인간의 대응성은 종종 저하됩니다. 이는 과잉 신뢰(trust bias) 문제와 연결됩니다.

• 설명 가능성: AI가 ‘왜 그런 진단을 내렸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의료 윤리의 핵심인 **정보에 기반한 동의(informed consent)**와 환자의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습니다.




통합적 관점


자율성(Autonomy) 증가 책임감 감소


AI가 더 ‘스마트’해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책임에서 물러서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볼 때, 기계가 자율성을 가진다고 해서 인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책임성 회복을 위한 기준

• 결정권의 명확화: AI가 언제 ‘권고’만 하는지, 언제 ‘결정’을 내리는지를 명시해야 함.

• 책임의 계층화: 개발자, 사용자, 관리자, 제3자 등 각 주체의 책임 범위를 계약이나 규정을 통해 사전 설정.

• 기술적 통제 가능성 확보: “AI를 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 인간은 시스템에 ‘정지 버튼’을 가질 수 있어야 함.




신학적·철학적 성찰

• 인간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기독교 인간학의 중심입니다.

• AI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는 있어도, 그에 따른 도덕적 숙고와 회개, 책임의 수용이 불가능합니다.

• 따라서 기계가 아무리 정교해지더라도, 결정에 수반되는 도덕적 책임과 윤리적 고뇌는 인간 고유의 역할입니다.


자유는 책임을 위한 것이며, 인간은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 응답할 존재다.

— 가톨릭 사회교리 요약, 제135항




요약 정리


항목 설명

핵심 문제 AI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짐

영역 예시 자율주행차, AI 진단 시스템 등에서 실제 사고 및 피해 발생

윤리적 쟁점 책임 회피, 법적 공백, 설명 가능성 부족, 과잉 신뢰

대응 방향 명확한 책임 설계, 설명 가능한 시스템, 인간의 개입 권한 보장

철학적 메시지 기술은 판단할 수 있어도 책임질 수는 없다. 책임은 인간의 몫이다.




2. 책임성과 자율성: 교회의 가르침과 국제 윤리 선언, 그리고 노동윤리 관점에서


I.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 책임은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문헌과 연설에서 “기술의 발전이 인간 책임성을 감퇴시켜선 안 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기술은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달려 있다.”

—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104항)


AI가 자율적 판단을 내리는 시대에도, 그 판단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누군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무책임한 기술문명의 시작입니다.

이는 교황이 경고하는 **“기술적 절대주의(technocratic paradigm)”**와도 연결됩니다. 자율주행차, AI 진단, 무기 시스템과 같은 분야에서 인간의 개입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때, 교황은 다음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발전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성숙이다.”


자율성을 갖춘 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면, 이는 기술의 도구성을 상실하고 인간을 책임 없는 사용자로 전락시키는 위험을 가집니다.




II. AI 윤리 선언들과의 연결


A. 바티칸 『Rome Call for AI Ethics』 (2020)


6대 원칙 중, 책임성과 자율성 문제에 직접 연결되는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칙 해설

책임성 (Responsibility) AI가 내린 판단에 대해 최종 책임은 항상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원칙.

신뢰성 (Reliability)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명확해야 함.

투명성 (Transparency) 사용자는 AI가 어떤 방식으로 판단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한 불투명성은 피해야 함.


AI의 결정이 인간의 생명, 건강, 권리와 연결되는 경우에는 특히, 인간이 판단하고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보장되어야 한다.

— Rome Call for AI Ethics, 제2조


자율주행차 사고나 의료 AI 오진은, Rome Call이 말하는 **“비인간적 결정의 윤리적 경계”**를 직접적으로 시험하는 사례입니다.


B. 유네스코 『AI 윤리 권고안』 (2021)


유네스코는 AI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지능이 아니라 주체가 책임진다”는 원칙을 강조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AI는 윤리적 책임 주체가 될 수 없다.”

— Recommendation on the Ethics of Artificial Intelligence, §2.2.4


• AI가 내린 판단이 인간에 의해 이해되지 않거나, 책임을 소유한 이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경우, 이는 “도덕적 공백(moral vacuum)”을 만들어냅니다.

• AI의 자율성은 도덕적 판단과 책임의 자율성으로 오해되어선 안 됩니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AI 설계, 운용, 관리 단계에서의 책임 분배 구조 명시를 필수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III. 노동윤리와 인간 중심 기술의 원칙


AI가 사람을 평가하고, 진단하고, 교통사고를 판단하고, 무기를 조작할 수 있는 시대는 인간 노동의 도구적 성격을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특히 전문직(의사, 교사, 기사 등) 영역에서 AI가 핵심 결정을 내리게 될 경우, “노동이 인간의 자아실현의 장인가, 아니면 AI 시스템의 보조자인가” 하는 본질적 질문이 발생합니다.


가톨릭 노동윤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표현하는 통로이며, 그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 자체에 있다.”

— 가톨릭 사회교리 요약, 제271항


적용:

• 자율주행차 사고 시 인간 운전자가 무력화되어 책임에서도 배제된다면, 이는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 자체가 상실된 것입니다.

• 의료 AI가 의사 대신 진단하고,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면, 이는 노동의 윤리성과 인간의 양심 작용을 기술이 대신하려는 위험입니다.

• AI를 노동 보조 도구로 설계하되, 궁극적 판단과 책임은 항상 인간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의 입장입니다.




결론: 자율성을 부여받은 기술, 책임을 되찾아야 할 인간


AI 시스템은 점점 더 정교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 판단의 도덕성, 그 결정의 정당성, 그 행위의 책임성은 여전히 인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인간만이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인간만이 ‘도덕적 존재’다.”

— 성 요한 바오로 2세, 『노동의 존엄』 Laborem Exercens


AI 윤리는 결국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묻는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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