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솔제니친의 '모닥불과 개미’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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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짧은 산문 중에 「모닥불과 개미」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솔제니친이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피워 놓은 모닥불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무심코 옆에 있던 썩은 통나무를 모닥불에 던져 넣습니다. 그러나 그 통나무는 수많은 개미들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뜨거운 불길이 통나무를 집어삼키자, 그 안에 있던 개미들은 필사적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불길에 휩싸여 경련을 일으키며 타 죽는 개미들을 본 솔제니친은 황급히 통나무를 모닥불 밖으로 꺼내 줍니다.


살아남은 개미들은 모래 위로, 솔가지 위로 흩어지며 생명을 건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솔제니친은 이상하고도 가슴 아픈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불길의 공포에서 벗어났던 개미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대신, 다시 방향을 바꾸어 불타는 자신들의 집, 즉 통나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솔제니친은 “그 어떤 힘이 그들을 불타는 통나무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라고 자문합니다. 개미들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린 듯 불타는 통나무 위로 다시 기어 올라갔고, 결국 그곳에서 자신의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자연 관찰을 넘어, 인간 실존에 대한 솔제니친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미물에게도 자기 자신의 생명을 던져서까지 지켜내야 할 어떤 것이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던 사회생물학 교수인 최재천 씨가 손석희 씨와 『양심』이라는 책의 내용을 가지고 나누던 대담에서 그는 시청자들에게 몇 가지 화두를 던졌습니다. 핵심적인 이야기는 23년 여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이야기였는데요.


“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비로소 공정이 된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공정은 가진 자의 잣대로 재는 게 아닙니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 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해진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후, 그는 대담을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서울대생들은 여러 가지로 혜택 받고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 선배들이 요즘 사회에서… 퍽 양심적으로 사는 것 같지 않아 보여서 하는 말이다. ‘당신들이 양심적으로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요?’”



위의 대담의 맥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도 생명을 내어놓을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우리 존재의 실존—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그 ‘무엇’을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 진리: 상황이 바뀌어도 거래할 수 없는 것(요한 8,32).

- 약속과 신의(信義): 관계를 지탱하는 언약의 힘(말라 2,14).

- 이웃의 생명과 존엄: 내 목숨보다 먼저 세우는 타자의 가치(요한 15,13).

- 정의와 공동선: 모두가 제 자리를 찾도록 질서를 바로잡는 사랑의 구조(미가 6,8).

- 그리고 양심: “사람의 가장 은밀한 성소이자 하느님과 대면하는 자리”(가톨릭 교리서의 요지).


양심은 감정의 일시적 고양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형성된 내면의 나침반이며, 진리를 향해 우리를 결박하는 약속의 끈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불길을 피하는 것보다, 왜 불길 앞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도망이 생존을 주지 못할 때가 있고, 머묾이 생명을 지키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 자주 들려온 물음도 이와 닿아 있습니다.


“공평은 양심을 만나야 공정이 된다.” 키가 다른 이들에게 똑같은 의자 하나씩을 나눠주는 것은 공평일 수 있으나, 작은 이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내어놓을 때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양심은 같이 나눠 가짐이 아니라 제대로 나눠 가짐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타는 불길 앞에서조차 지켜내야 할 것’의 이름입니다. 힘의 논리가 아니라 약자의 자리에서, 내 편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존엄에서 판단하는 것. 그 선택은 때로 내 안락을 태우지만, 참으로 나와 공동체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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