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다(2)
마더 테레사 수녀가 미국의 한 도시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 여성 신자가 매달려 말했습니다.
“수녀님, 저는 지금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더는 살 힘이 없어요.”
수녀는 조용히 답했습니다.
“자매님, 결정하기 전에 한 가지만 부탁합니다. 인도 콜카타(옛 캘커타)로 와서 한 달만 저와 함께 살아보세요. 그 뒤에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초대를 받아들였습니다. 콜카타에서 그는 길 끝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마주했습니다. 오랜 기아와 질병으로 말라가는 사람들, 죽음의 문턱에 선 이들 곁에서 함께 살고 돕다 보니,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신의 부재, 침묵, 비개입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과감히 역설을 선포합니다.
십자가는 불평등한 행복처럼 보이나, 그 안에서 사랑은 가장 고르게 흘러갑니다.
십자가는 어리석은 지혜요, 고통의 평화이며, 비참해 보이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곧 하느님의 사랑 자체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무의미한 맹목이 되고, 십자가 없는 부활은 공허한 환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랑과 구원의 초대장입니다.
성 요한 비안네에게서 전해지는 말처럼, “십자가는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요,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고통을 미화하자는 뜻이 아니라, 사랑이 고통을 관통해 새 생명을 낳게 하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배는 바닥짐이 있어야 균형을 잃지 않고 파도를 견딥니다. 바닥짐이 없으면 작은 물결에도 휘청이다가 결국 전복됩니다.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바닥짐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은 그것을 십자가라 부릅니다.
십자가는 삶의 무게를 더하려는 짐이 아니라,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중심을 만들어 줍니다.
‘인간미’가 따뜻함을 말한다면, ‘인맛’은 한 사람의 고유한 풍미입니다.
맛이 미각만이 아니라 후각·시각·촉각을 통합하듯, 인맛은 개성과 매력, 인성, 삶의 태도가 응축된 총체적 느낌입니다.
사람의 인생에는 단맛만이 아니라 쓴맛·짠맛·신맛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 복합의 맛이 바로 인맛을 빚습니다. 그리고 그 맛을 깊게 끓여내는 불은 대개 십자가의 불입니다.
한 사람의 바닥짐은 무엇일까요? 그 사람의 인맛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짧은 만남으로는 알기 어렵지만, 시간이 말해 줍니다.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고 오래 바라보며 견딘 사람에게는,
바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이 생기고,
삶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깊이가 배이며,
타인의 상처에 먼저 다가가는 연민의 기술이 익어갑니다.
십자가 없는 삶은 작은 시련에도 흔들립니다.
십자가 없는 인맛은 잠깐 달콤할 수 있지만, 곧 밋밋해져 환영받지 못합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뿌리째 흔드는 폭풍 앞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해일 같은 파도 속에서도 좌초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됩니다.
십자가의 첫맛은 대개 고통입니다. 때로는 멍에처럼 무겁습니다.
그러나 바닥짐 없는 배가 오뚝이처럼 서지 못하듯, 십자가 없는 인생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쓴맛을 통과한 사람만이 인생의 신비로운 감칠맛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오래 끓이듯 견디십시오.
그 인내 속에서 부활의 불맛이 배고, 당신만의 인맛이 깊어집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십자가는 삶을 무너뜨리는 짐이 아니라, 사랑을 완성하는 중심입니다.
그 중심을 품고 오늘 한 걸음—담대히 나아갑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