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다(1)

by 진동길



부활은 고통을 우회할 때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할 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신앙인의 인생여정은 자신의 십자가를 피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부활로 승화하려는 꾸준한 노력 그 자체입니다.


심리학과 사회학도 같은 맥락에서 말합니다. 인간은 고통과 좌절을 성찰로 받아들일 때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종교적 언어를 넘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고통·책임·숙명이라는 차원에서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관계의 십자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깊은 상처를 남기는 십자가입니다.
화목하지 못한 가정, 돌봄의 과중한 부담, 인간관계의 배신과 오해, 설명하기 힘든 고독과 고립감—이 모든 것이 마음을 무너뜨리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용서와 인내, 경청과 경계를 배우게 됩니다.


2) 경제·직업의 십자가

존엄을 위협받는 생존의 압박입니다.
벗어나기 어려운 빚의 굴레, 가장의 책임, 꿈과 현실의 간극, 직장 내 괴롭힘과 부조리, 실직과 불안정한 미래. 여기서 우리는 절제·정직·연대의 힘, 그리고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훈련합니다.


3) 육체와 정신의 십자가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상처입니다.
만성 질환과 난치병, 선·후천적 장애,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 우울·불안 같은 마음의 병, 각종 중독. 아픔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연대는 깊어지고 연민은 기술이 됩니다—치료, 재활, 꾸준한 생활 리듬이라는 구체적 기술 말입니다.


4) 실존·내면의 십자가

자기 자신과의 가장 긴 싸움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과오, 낮은 자존감과 자기혐오, 삶의 의미 상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사실 직면, 책임 수용, 자기 자비, 그리고 새롭게 선택할 자유를 배웁니다.


5) 사회적 십자가

개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짊어져야 하는 구조적 무게입니다.
출신·학벌·성별·외모 등으로 인한 편견과 차별, 억울한 누명, 청년 세대의 무한경쟁. 이때 필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버티는 공적 덕성—권리 옹호, 제도 개선, 데이터와 증거로 말하기, 시민적 연대입니다.


6) 신앙 안에서의 십자가

하느님의 침묵 속에서 겪는 영적 어둠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시간, 하느님이 멀리 느껴지는 “십자가의 밤”(성 요한의 체험),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상처와 실망, 신앙 때문에 겪는 손해·박해·순교.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맡김과 희망, 공동체적 치유가 다시 시작됩니다.




우리 삶의 ‘십자가’는 추상이 아닙니다. 매우 구체적이며, 각자의 어깨에 실제로 얹혀 있습니다. 크든 작든 누구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걷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도록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이름을 붙여 직면하기, 도움을 청하기, 일상적 루틴으로 몸을 지키기, 공동체와 함께 짐을 분담하기, 말씀과 성사 안에서 다시 일어나기.


마지막으로 기억합시다.
십자가는 삶을 끝내는 장치가 아니라, 사랑을 완성하는 통로입니다. 오늘 내 앞의 십자가를 회피가 아닌 성숙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그 한가운데서 하느님께 협력한다면, 부활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용기 내어 한 걸음 더 갑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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