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누구나 행복과 불행의 경계선 위에 있다

by 진동길


여러분!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저는 현대 예술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중요한 행위 예술 하나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깊은 영적 성찰의 시간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1974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라는 예술가가 벌인 '리듬 0'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입니다.


여러분께 한번 묻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 앞에 어떤 사람이 서서, "나는 지금부터 6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물건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슨 짓을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라고 선언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손에는 장미와 깃털, 그리고 날카로운 칼과 장전된 총이 함께 들려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974년, 아브라모비치는 바로 이 질문을 온몸으로 던졌습니다. 그녀는 6시간 동안 자신을 살아있는 조각상으로 내어놓고, 관객들에게 72가지의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에게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꿀과 와인, 장미가 있었고, 동시에 고통을 줄 수 있는 채찍과 가위, 면도칼, 그리고 한 발의 총알이 장전된 권총이 있었습니다.




처음 한두 시간 동안, 사람들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들은 예술가에게 장미꽃을 안겨주거나, 깃털로 간지럽히고, 가벼운 입맞춤을 했습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이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브라모비치가 아무런 반응도 없는 완전한 ‘객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상황은 돌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대담해졌습니다. 한 사람이 그녀의 옷을 가위로 찢자, 다른 사람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몸에 장미 가시를 박고, 면도칼로 상처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한 남자는 장전된 권총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그녀의 머리에 겨누기까지 했습니다. 그 순간, 그 공간을 지배한 것은 더 이상 선의가 아니었습니다.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잔인함, 제약이 사라졌을 때 분출되는 억눌린 폭력성이었습니다.


6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아브라모비치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자신을 학대했던 관객들을 향해 조용히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물건 취급하며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고,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움직이지 않던 ‘물건’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의 무게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향했던 대상이 고통을 느끼고 슬픔을 아는,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모비치가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그녀의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50년 전의 퍼포먼스는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몇몇 잔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는 장미와 깃털도 있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칼과 장전된 총도 존재합니다. 우리에게는 타인을 세워주고 사랑할 힘도 있지만, 무너뜨리고 상처 입힐 잠재력도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타인을 ‘객체’로 대하고 있습니까? 때로 우리는 익명성 뒤에 숨어버리거나 이웃과 형제를 인격체가 아닌 공격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의 이익을 위해 동료를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나의 편의를 위해 이웃과 형제들을 감정 없는 ‘기계’처럼 대하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아브라모비치의 옷을 찢던 그 관객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리듬 0’의 폭력이 멈춘 순간은 예술가가 다시 ‘사람’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해답입니다. 우리 안의 폭력성을 잠재우고 선함을 이끌어내는 힘은, 바로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를 ‘물건’이 아닌 ‘이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꽃다발? 마음이 담긴 편지? 성경과 묵주? 사랑한다는 한 마디의 말? 친절과 배려? 인내와 겸손? 아니면 이웃의 마음과 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언행이나 도구?


아브라모비치가 피 흘리는 몸으로 관객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죄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람’으로, 사랑하는 자녀로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안의 ‘리듬 0’을 멈춥시다. 타인을 향한 비인간적인 시선을 거두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봅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손에 들린 것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칼이 아니라, 그의 상처를 닦아주는 부드러운 손수건이요, 그의 기쁨을 기원하는 향기로운 장미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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