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흙의 아들들

by 진동길

서(序)


천 년이 저물어가던 해원 들녘은, 벼 이삭이 무겁게 고개를 숙인 만큼이나 사람들 눈꺼풀도 무거웠다. 그러나 그 황금빛 위로 드리운 것은 풍요가 아니라 쇠붙이들의 긴 그림자였다. 남해에서 올라온 짠 바람이 해원천을 타고 억새밭을 흔들면, 억새는 마치 다가올 흉사를 먼저 아는 것처럼 하얗게 풀려 울었다.

가뭄 탓이 아니었다. 땅이 갈라진 것은 ‘개발제한구역 해제’니 ‘신도시 지구 지정’이니 하는 붉은 깃발들이 논두렁마다 말뚝처럼 박히면서부터였다. 소가 쟁기질하던 자리에 포크레인이 짐승처럼 웅크렸고, 평생 흙을 파먹고 산 사람들은 이제 흙을 팔아먹기 위해 서로의 목을 세었다. “새 천 년이 온다”는 말이 장터를 돌았지만, 해원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은 숫자의 괴담이 아니라 돈의 냄새였다.

읍내 가장 높은 언덕 위, 붉은 벽돌로 성채처럼 쌓아 올린 최태국의 집—해원장.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냄새는 풍요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값으로 매기는 냄새’였다. 나라가 휘청이던 해, 어떤 이들이 반지를 내놓고 어떤 이들이 다리 위에서 신발을 벗어두는 동안, 최태국은 현금 다발로 부도난 공장과 헐값의 땅을 물어뜯었다. 그 붉은 집은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무덤 위에 세운 제단 같았다.

그 집에서는 무엇이 자라고 있었던가. 증오가 자라고 있었다. 아비를 향한 자식의 증오, 자식을 향한 아비의 경멸, 형제를 향한 형제의 살의. 해원의 흙은 본래 비옥해서 검었다. 대대로 일군 땀이 스며 검게 빛났다. 굶주린 시절에도 전쟁 뒤에도 그 흙은 사람을 살렸다. 그러나 이제 그 흙은 탐욕에 썩어, 같은 검정이라도 다른 검정이 되어버렸다. 살리는 검정이 아니라, 삼키는 검정.

해원천은 말없이 흘렀다. 사람의 욕심도 슬픔도 피도 실어 나르되, 강은 말이 없다. 말 없는 것들은 대개 오래 남는다. 장터 귀퉁이, 50년 묵은 국밥집을 지키는 정 할머니는 마당에 물을 뿌리며 중얼거렸다.


“흙이 운다.”


듣는 사람은 없었다. 들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흙은 울었다. 밟히고 파헤쳐지고 사고팔리며, 제 속에 묻힌 뼈들을 기억하며 울었다. 바야흐로 짐승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2000년 1월 1일, 새 천 년의 첫 해가 떠오르던 아침, 최태국이 죽었다. 그의 세 아들은 모두 그를 죽일 이유가 있었고, 그중 한 명은—아니, 어쩌면 그들 모두가—정녕 그를 죽였는지도 몰랐다.

이것은 그 형제들의 이야기다. 아비를 죽인 자식의 이야기이자, 흙을 잃고 흙을 되찾으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게 썩어버린 땅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이야기다.


흙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선한 것도, 악한 것도, 피도, 눈물도. 그리고 언젠가, 그 모든 것을 다시 돌려준다. 씨앗의 모습으로, 싹의 모습으로.

그것이 흙의 이치다.




1999년 12월 31일, 해원
— 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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