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땅의 주인들 (1970~1997)
해원천 상류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면 화림리(花林里)라는 마을이 나온다.
섬진강 지류가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그곳은, 봄이면 매화와 살구꽃이 온 마을을 하얗게 수놓고, 여름이면 계곡물이 바위를 타고 넘어 옥 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가을이면 단풍이 산을 붉게 물들이고, 겨울이면 눈이 소복이 쌓여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가 내려앉는 곳이었다. 마을 어귀에는 삼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서 있었고, 그 느티나무 아래에는 장승이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 화림리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 바로 윤 씨네 집이었다.
1970년 가을, 윤 씨는 열아홉 살이었다.
집 앞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 앉아 빨래를 하던 윤 씨는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창백하고 여윈 얼굴. 윤 씨는 한숨을 내쉬며 물을 휘저었다. 물결이 일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윤아!”
안채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 씨는 황급히 빨래를 마치고 일어섰다. 치마에 묻은 물을 털고 안채로 들어가니, 어머니가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어무이…”
“윤아, 니… 니 아부지가…”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윤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 또 생긴 것이다.
사랑채에서는 낯선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친 목소리들이었다. 윤 씨는 사랑채 쪽으로 발을 옮겼으나, 어머니가 윤 씨의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가지 마라.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빚쟁이제?”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 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윤 씨네 집안은 화림리에서 3대째 내려오는 양반가였다.
할아버지는 한학을 가르치던 훈장이었다. 사랑채에서는 늘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할아버지는 엄하면서도 자상한 분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창씨개명을 거부하여 왜순사에게 끌려가 곤욕을 치렀으나, 끝내 조상의 성을 지켜냈다.
“내 조상의 성을 어찌 바꾸겠는가. 죽어도 못 바꾼다.”
해방 후, 동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존경했다. 6.25 전쟁 때는 인민군도, 국군도 할아버지를 건드리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다만 사랑채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윤 씨는 그런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자랐다.
“물을 보거라. 물은 낮은 데로 흐르되, 언젠가는 바다에 이른다. 사람도 그러해야 한다.”
연못가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말씀들. 윤 씨는 그 말씀의 뜻을 다 알지는 못했으나, 할아버지의 목소리만은 또렷이 기억했다. 낮고 온화하지만 단단한 목소리.
할아버지는 윤 씨가 열두 살 되던 해 봄에 돌아가셨다. 아침 일찍 사랑채에 나가 단정히 옷을 여미고 앉아 계시다가, 그대로 숨을 거두셨다. 마치 잠든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윤 씨는 빈소 앞에서 사흘 밤을 울었다. 오빠들도 울었고, 아버지도 울었고, 마을 사람들도 울었다. 화림리는 그해 봄, 매화꽃이 아무리 피어도 슬픔에 젖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안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만큼 강직하지 못했다. 아니, 강직하려 애쓰다가 오히려 세상 물정에 더 어두어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람은 의리로 사는 법"이라 가르치셨으니, 아버지는 그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1960년대 말, 아버지의 친구 하나가 찾아왔다.
“윤 형, 나 좀 도와주게. 사업을 하나 벌이려 하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리자카이 보증인이 있어야 된다카더라. 자네가 도장만 찍어주면 되네. 절대 폐 안 끼친다.”
아버지는 고민도 하지 않고 도장을 찍었다.
“친구 간에 의리제. 믿고 해보이소.”
그 친구의 사업은 망했다. 빚은 보증인인 아버지에게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백만 원이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으나, 논밭을 조금 팔면 갚을 수 있는 액수였다.
“조금만 기다려 주이소. 내 땅 팔아서라도 갚을 낄 거니께.”
하지만 빚은 이자를 낳았고, 이자는 또 이자를 낳았다. 일 년이 지나니 빚은 두 배가 되었고, 이 년이 지나니 네 배가 되었다.
동쪽 논이 팔려나갔다. 서쪽 밭이 팔려나갔다. 산 밑의 밤나무밭도 팔려나갔다. 대대로 내려오던 땅들이 한 뼘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빚쟁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중했다.
“윤 선생님, 이거 좀 곤란합니다. 약속한 날짜가 지났는데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이소. 조금만 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말투는 거칠어졌다.
“야, 이 양반아!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기고? 당장 안 갚으면 집 빼앗는다!”
1970년 가을, 그날도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윤 씨 계십니까?”
사랑채 마루에 올라선 사내는 건장한 체격에 눈빛이 사나웠다. 뒤따라 두어 명의 사내들이 더 들어섰다.
“여그… 여그 계십니더.”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윤 씨는 안채 마루 끝에서 몸을 숨기고 사랑채 쪽을 바라보았다.
“빚 갚을 돈 준비했습니까?”
“그게… 그게 아직…”
“아직? 야, 이 양반아! 벌써 두 달이 넘었어! 이자만 해도 얼마인 줄 아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는 무신 조금만 더고! 더 이상은 못 기다린다!”
빚쟁이 두목으로 보이는 사내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아버지는 마루에 엎드렸다.
“제발… 제발 좀…”
“집 안을 좀 뒤져봅시다. 값나가는 거 있으면 가져갑시다.”
사내들이 사랑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윤 씨는 숨을 죽였다.
“이거, 골동품 아입니까? 벼루랑 족자?”
“그건… 그건 선친의 유품입니더!”
“유품이고 뭐고, 빚 갚는 게 먼저 아입니까?”
“안 됩니더! 그것만은… 그것만은…”
아버지의 절규가 들렸으나, 사내들은 개의치 않았다. 할아버지가 평생 아끼시던 벼루, 족자, 책가지들이 보따리에 싸였다.
“어무이…”
윤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윤 씨를 꼭 껴안았다.
“참아라, 윤아. 참아라…”
하지만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것은 할아버지의 혼이었다. 할아버지가 평생 모으신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빚쟁이들 손에 들려 나가고 있었다.
빚쟁이들이 돌아간 뒤, 사랑채는 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사랑채 마루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오빠들도 울었다.
윤 씨는 울지 않았다. 다만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을 뿐이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피가 났으나, 윤 씨는 느끼지 못했다.
그날 밤, 안채에서는 긴 이야기가 오갔다.
“이제… 이제 방법이 없네그려.”
아버지의 목소리는 기운이 다 빠진 듯했다.
“남은 논밭도 다 팔아야 될 것 같소. 그래도 빚을 다 갚을 수 있을지…”
“당신, 그럼 우리 식구는 어쩌고…”
“내 알겠소? 내 알겠소!”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못난 아비요. 내 어찌… 어찌 이런…”
윤 씨는 방문 밖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며칠 뒤, 또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었다.
“윤 씨, 이제 더 이상은 못 기다린다. 집을 내놔라.”
“집을… 집을요?”
“그래, 집. 이 집이 얼마나 나가노? 한 300만 원은 되겠제? 그럼 빚 다 갚고도 남을 끼다.”
“안 됩니더! 이 집은… 이 집은…”
“야, 이 양반아! 그럼 뭐로 빚을 갚을 건데?”
그때였다. 빚쟁이 중 한 명이 안채 쪽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 집에 딸이 하나 있다카던데?”
그 말에 아버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어머니는 황급히 안채로 뛰어들어가 윤 씨를 안채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갔다.
“숨어라, 윤아. 나오지 마라.”
빚쟁이들이 돌아간 뒤, 집안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조용했다.
그날 밤, 어머니가 윤 씨의 방으로 찾아왔다.
“윤아…”
어머니는 윤 씨의 손을 꼭 잡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얘야, 니가… 니가 시집을 가야 할 것 같다.”
윤 씨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나, 그 말을 직접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디로 가는 기예요?”
“그게… 그게…”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하다, 윤아. 어미가… 어미가 미안하다.”
어머니와 딸은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울었다.
며칠 뒤, 초겨울의 찬바람이 화림리를 휩쓸던 날, 낯선 남자가 윤 씨네 집을 찾아왔다.
키는 크지 않았으나 어깨가 떡 벌어진,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얼굴은 번들거렸고, 양복은 구겨져 있었으며, 손에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었다.
“윤 선생님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예, 저는 최태국이라 캅니더. 해원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더.”
최태국은 사랑채 마루에 올라 가방을 툭 내려놓았다. 가방이 바닥에 닿는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났다. 돈뭉치가 들어 있는 소리였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형편을 들었습니더. 빚이 좀 있으시다카던데?”
“…그게… 어찌…”
“이 동네가 좁지 않습니까. 소문 다 들립니더. 빚이 얼마나 됩니까?”
“…200만 원이 좀 넘습니더.”
“200만 원.”
최태국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그 빚, 다 갚아드릴랍니더.”
“…네?”
“대신 조건이 있습니더.”
아버지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선생님 댁 따님 하나 있으시다카는데? 제게 주이소.”
“…뭐라 카십니까?”
“결혼 말입니더. 저한테 시집보내주이소. 그럼 빚은 제가 다 갚아드릴랍니더. 그뿐만 아이라, 혼수도 제가 다 장만할랍니더. 선생님 댁 살림도 제가 책임질랍니더.”
“최… 최 선생, 그게 무신…”
“저도 압니더. 제가 양반집 사위감이 못 된다는 거. 허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더. 이제 양반이고 뭐고 없습니더. 있는 건 돈뿐입니더. 저한테는 돈이 있습니더.”
최태국은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정말로 돈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만 원짜리 지폐들이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이게 100만 원입니더. 계약금이라 생각하이소. 결혼 승낙해주이면 나머지 100만 원은 혼례 전에 드릴랍니더.”
“저… 저는…”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최태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생각하이소. 허나 빚쟁이들이 다시 오기 전에 결정하는 게 좋을 낍니더. 제 연락처는 여그 있습니더.”
최태국은 명함을 두고 갔다. '태국 금융’이라는 간판이 적혀 있었다.
윤 씨는 안채 마루 구석에서 그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윤 씨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